김진아 작가 < 출가외인: 무용의 레이어>
글 조주리
전시가 있기 몇 달 전 우리는 서로의 삶과 일상의 시선을 가늠하기 위해, 오후 한낮 동안 즐거운 대화를 시작했다. 사회가 규정한 적정 혼기를 지난 불혹의 청자(비평가)와 이십 대 중반, 비교적 이른 혼인을 한 젊은 화자(작가) 사이의 대화는 생각보다 즐겁다. 서로가 다름에도, 혹은 바로 그 다름 때문에 대화는 생산적이다.
작업에 관한 진지한 소개에 앞서, 일종의 ‘스타터’로서 우리가 나누었던 한담은 농장에서의 경작, 결혼과 작가의 삶, 전시 기금 운영과 같은 단편적 말들로 이어졌다. 어떤 이야기는 서로 흘려 들었고, 또 어떤 대목에서는 좀 더 집중해서 공감했다. 사이사이, 나는 김진아 작가는 본 적이 없다고 하는 일본의 요리 드라마 ‘오센’에서의 무조림 에피소드와 일종의 밥상 영화라 할 수 있는 ‘바베트의 만찬’에 나오는 미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대화의 기어를 맞춰간다. 음식, 일상, 무용함. 주로 이런 틀 안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었던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또렷하게 기억나는 모습이 있다. 열심히 노력해도 크게 나아지거나 달라질 것 없는 평범한 삶에서 오는 무기력과 권태를 이야기하는 작가에게서 풍겨나는 비할 바 없이 싱싱하고 건강한 에너지가 그것이다. 짧게 친 굵은 머리칼 아래로 건강한 땀방울이 흘러내렸을 어두운 피부와 어느 한 구석 비실한 데 없이 똑바른 체격이, 그 젊음과 생기가 나에게는 참으로 옹골차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니까, 귀로 듣고 있는 내용과 눈으로 목격하는 심상 사이에서 피어나는 이질감이 당혹스러웠고, 또 그만큼이나 흥미로웠다. 권태로운 사람의 권태로운 이야기라면 듣고 싶지가 않았던 터이다.
김진아 작가는 예정된 전시의 제목이 ‘출가외인’이라고 했다. 결혼 생활과 작가의 삶을 함께 밀착해 내야 하는 여성의 삶을, 그것이 파트너가 있는 여성으로서의 든든함이든 며느라기로서의 고단함이든 간에, 얼마간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기에, 얼핏 유교적 가치관이 투영된 출가외인이라는 표현을 통해 작가가 무엇을 발언하고자 하는지 어림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김진아가 말하는 ‘출가’를 원래 자라온 터전에서 벗어난 여성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집’을 나온 사람으로 넓혀 이해한다면, 작가를 포함한 동시대인 대다수가 바깥으로는 도시살이, 안으로는 가족살이를 견뎌내고 있다는 점에서 출가외인은 보편의 존재들, 그리고 그들의 고단한 삶의 행로를 지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전의 작업에서부터 꾸준히 시도하고 실천해왔던 밥을 짓는 행위나 식자재를 소중하게 다듬고 변형하는 식의 퍼포먼스가 그러니 그 모든 과정, 집을 나가고 들어오는 행로를 막기도 하고 열어주기도 하는 중요한 지점으로 이해 되었다.
따라서 ‘출가외인’으로 명명한 일련의 행위들은 어쩌면 작가가 나고 자란 원 가족과의 역사로부터 촉발된 작업일 수도, 새롭게 결성된 가족과의 꾸려가는 삶에 대한 단서일 수도 있다. 더불어 작업이라는 이름으로 특수하게 설정된 예술적 실천과 일상적 삶의 체험 사이에 걸쳐져 있는 미술가로서의 주제 설정에 관한 고민의 결과물일 수도, 여성 주체로서의 현실 인식과 나름의 예술적 대응일 수도 있겠다. 우선은 짐작 가능한 몇 가지 범주와 맥락 속에서 나는 김진아의 활동들을 이해해 본다.
출가외인의 활동이 ‘무용의 레이어’로 수사되는 까닭에 대한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그날 새벽 일산의 농장에서 캐온 양배추와 고추, 각종 푸성귀들이 담긴 봉투를 손에 꼭 들려 주고서야 우리는 헤어졌다. 참 바지런하고 남에게 베풀기 좋아하는 성정이구나 싶어, 실팍한 작물을 감사히 받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진아의 첫 개인전 소식을 전해 들었다. 첫 전시를 통해, 나는 전시이지만 또, 전시가 아닌 것으로 작업의 현장을 받아들이게 된다. 미술가의 ‘작업’과 생활인의 ‘일상’이 포개지는 영역에서, 밭에서 작물을 기르고 집으로 가져와 그것들을 다듬어 요리하고, 누군가를 먹이는 일련의 행위를 해나가는 작가에게 최근에 그녀가 구축해온 삶의 리듬과 열성적인 시도들은 다시 작업의 무대로, 전시의 주제로 이행되고, 이윽고 일상적 삶의 순간들로 귀환한다.
소재로써 다루어지는 농작물과 음식이 불러일으키는 지엽적인 오해들, 즉 도시 농부로 표상되는 대안적 삶을 상찬하거나 작업의 소재로서 음식물이 다루어진 미술 역사 안에서 이미 시도되었던 어떤 전형들을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시는 오히려 김진아가 지난 몇 년 간 품어온 작가적 고민과 일상적 실천들을 풍성하게 펼쳐내고 솜씨좋게 다음은 모양새이다. 작가가 품고 있는 젊은 철학, 아직도 영글어 가고 있는 고민들이 전시에서 힘차게 발아하는 순간이다.
공간에서의 전시는 김진아가 시도해 온 중간 과정의 성취들을 미술적 어법으로 연출하여 발언하고, 관객들에게 일시적으로 ‘프레젠테이션’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매일 반복되는 노동과 수행이 스물 네 절기를 지나는 동안 열매 맺고, 추수하고, 다시 메마른 땅에서 시작하는 총체적 과정을 전제로 하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또한 전시장 안팎에서의 여러 타인들과 적극적으로 주고 되갚는 품앗이, 관람객의 참여, 전시 이후 다시 일상의 삶으로 되돌아가야 비로소 온전한 사이클을 완주하게 되는 일종의 ‘액티비티’인 셈이다. 실로 전시는 짧고, 생활은 길다.
전시가 전하고자 하는 기저의 메시지는 좀 더 집중적이고 강력한 것들이다. ‘출가외인 프로젝트’는 결혼을 기점으로 작가 스스로에게 세습되어 온 일상적 행위, 그 중에서도 식사를 준비하고 먹고-먹이는 반복적 행위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생명의 유지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혹은 그야말로 미식 그 자체를 위해서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지겹도록 먹고 먹이는 노동과 관계의 사슬은 영원히 계속된다. 여성 노동의 문제이기 이전에 모두에게 그 절실함과 하찮음이 같은 무게로 다가오는 생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용의 레이어를 통해 펼쳐내고 싶었던 것은 작가 자신의 삶에서 출발한 한 개인의 이야기, 그 생산성과 하찮음의 대비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서사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이중적 스토리이기도 하다.
전시에서 중요하게 전시되는 것은 음식의 재료들과 그것들을 길러내는 작가적 노동의 흔적,수행적 가치만은 아니다. 오히려 전시에서 강조되는 부분은 요리과정에서 쓰고 쉽게 버려지는 무용한 재료들이다. 각자가 학습한 대로 요리에 필요한 어떤 이상적인 형상이 도출되고, 나머지는 껍데기 혹은 쓰레기로써 버려지는데, 이것이 바로 작가가 애틋하게 생각하는 일종의 무용한 레이어에 해당한다. 당연하게도 작가가 차려낸 정찬이란 버려진 존재로부터의 전 존재를 발견해내고 중앙의 무대에 멋지게 복권해낸, 그만의 테이블이다.
대지가 씨앗에 보드라운 살을 내어주는 베품과 검은 흙 속에 파묻힌 자잘한 고갱이들을 정성으로 키워 올리는 농부의 되갚음. 그 속에서 더디고 무기력한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이윽고 하나의 생명이 피어난다.
김진아가 건져 올린 작은 이삭들, 말단의 줄기들, 시들어가는 껍질과 같은 무용해 보이는 레이어들이 전하는 어떤 에너지 속에서 반문해 본다. 무용함은 정말 무용함에서 그치는 것일까. 그 가치는 언제, 어떻게 전도되는 것일까. 그런 질문들을 품고서 그녀가 성큼성큼 대문을 나서 어디론가 부지런히 보폭을 옮겨가는 동안, 다음 지대를 함께 멀리 굽어본다.
* 김진아 작가의 의뢰로 쓴 짧은 글입니다. 조사나 종결 어미형 등 몇가지 작은 표현들은 이곳에 올리면서 고쳐썼고, 이미지는 작가로부터 제공받은 것입니다.
김진아 작가의 홈페이지 주소 : https://kima15896.wixsite.com/jin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