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된 백색은 밝고 화사한 가운데 어쩐지 슬프고 매캐하다. 아름답다고만 하기에 많은 것들이 불편해진다. 마음 속 깊이 똬리를 틀고 있는 민족주의, 본질주의적 사고, 인간 중심성, 전체주의에 대한 혐오, 탈식민적 시선을 견지하려고 하는 긴장감, 학습된 도덕주의와 그에 대한 반동 같은 복잡한 정서가 얽히고 부딪힌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백색은 덜 마른 듯 비릿하거나 지나친 번뜩임에 동공이 차갑게 닫힌다. 반면 나이든 백색의 사물들은 습기에 슬고 빛에 열화되어 간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안도감과 만족을 찾아낸다. 다양한 백색의 사물을, 백색의 표면이 보장하는 안전하고 매끄러운 감촉과 서늘한 온도를, 나는 좋아하며 신뢰한다. 단조로운 색감이 주는 공간의 밀도와 도시의 안면, 청결한 침구와 옷가지들, 찬이 돋보이는 흰 식기, 만년필의 펜촉이 닿는 매끄름한 흰 종이. 다채로운 것들과 함께 있을 때, 그제야 색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두 세계를 오가며 자꾸만 다른 종류의 것들을 이어보곤 했다.
대관령의 양떼구름과 소각장의 미세먼지 연기, 한산 세모시 저고리와 노르망디 트위드 자켓, 백색 칸두라(Kandura, 아랍 남성복식)와 검은 아바야(Abaya, 아랍 여성복식), 백자 항아리와 달 항아리 모양의 체육기념물들, 백골단의 흰 헬멧과 홍콩의 흰옷 괴한들. 서로 다른 시공에서 엉뚱한 짝패를 찾아내고 맞대어보는 일은 공식적 지리와 개인의 자리, 그때와 지금 사이를 흐르는 불균등함을 해소하고 재분배하려는 인지 처리일 것이다.
춘하추동 네 계절, 여러 도시를 지나치며 여러 쌍으로 구성된 두 세계를 왕복한다. ‘고유함’, ‘전통적인 것’, ‘아름다움’이라 여기는 것들로부터 멀어진 오늘. 삶의 홍진을 툭툭 털어내면 희뿌옇게 드러나는 것들. 매끄러운 막을 걷어내면 돋아나오는 거친 것들을 보고, 듣고 싶다. 백색에 담긴 총 천연의 내음을 맡고, 날아가는 세계의 입자를 만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