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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r united Mar 23. 2021

Take and Give

지원 하기의 예술, 지원 받기의 윤리

Take and Give: 지원 하기의 예술, 지원 받기의 윤리

 
글 조주리 
 
문화예술과 관련된 보조적 일들을 수행하던 이십 대 후반이 저물어가는 시점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론이 아닌 정책이라는 판단이 불현듯 들었다. 문화정책을 공부하러 적잖은 나이에 유학을 감행했지만, 다시 돌아와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곳은 또 다시 미술 업무의 전장. 대규모 예산을 소비하는 곳, 국제 비엔날레였다. 다시금 익숙한 매뉴얼대로 일하며 종종 흘려버린 시간을, 판단착오를 후회하곤 했다. 작가들을 위해 교류 기금을 살피고, 조직을 위해 협찬제안서를 쓰는 데 미약한 도움 정도 되었을까. 정책을 공부했다고 그것을 설계할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음을, 예술인들이 정책을 생산할 수 있는 위치에서 한참 벗어나 있음을 직시할 수 밖에.
 
이후, 조직생활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 기획자로 활동하면서, 넓게는 문화예술정책 좁게는 개인이 접속할 수 있는 각종 창작지원제도 및 예술 복지정책에 보다 뾰족하게 촉을 세우게 되었다. 공공의 지원받는 일이 점점 당연해지고, 못 받으면 속상해지는 정책의 소비자가 된 것이다. 그 시작이 엊그제 같다. 8년 전 이 즈음, 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기획자 공모 프로그램을 통해 첫 기획전을 만들어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제법 큰 규모의 기금과 두 달 가까이 쓸 수 있는 유서 깊은 미술 공간이 주어졌고, 무엇보다 홈페이지에 최종 선정자로 명시된 이름 석사가 제도 바깥에서 서성이던 시간을 달콤하게 벌충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능력치를 넘어서는 기획의 약속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심리적 분투, 행정이라는 이름으로 기획자를 압제하는 시스템과 부딪혀 얻은 내상을 떠올리면 어느 하나 간단한 일은 없었다. 첫 전시에서, 기획부터 정산까지 총 10개월을 일했고, 13팀에 이르는 작가들과 참여 인력의 세무 업무 처리로 종종거리고, 각종 협약 문서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부족한 전시 자금을 보충하기 위해 별도의 해외 지원금을 신청하고, 공사 인부를 불러 직접 시공을 해야만 했고, 작가들이 원하는 수준의 미디어 장비 확보를 위해 기업으로부터 협찬을 받아왔다. 기획자의 인건비가 전체 예산의 1/20 남짓이었지만, 적다고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500 페이지 분량으로 쌓인 두툼한 문서철과 함께, 짠 내 가득한 시간이 지나갔다. 전시에 투영한 욕망이 컸기에 자초한 일이었고, 그까짓 쯤이야 치러내야 할 수고의 총량으로 수긍하고자 했다. 일을 통해 깨우치고,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무게 추를 달아보려 했다. 지금은 실종된, 초심자의 선량함이었다고 할까. 이후, 나는 제도를 끊임없이 비난하면서 그것을 놓지 못하는 분열증적 기획자이자, 지원받기를 통해 생존을 구사하는 생태계의 일원이 되었다.
 
‘기획머리’가 늘고, 그와 비례하여 ‘예술근육’은 줄어드는 동안, 나는 기획자의 전시 생산 및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해주는 문화예술기금을 꽤 여러 차례 받아왔다. 최선을 다해 설득했지만 심사에서 떨어지는 일도 있고, 받는 돈에 비해 과한 퍼포먼스를 할 때도 있고, 얼결에 예술 복지에 무임 승차한 듯한 기분이 드는 때도 있다. 제도 안을 이리저리 유영하면서 삶의 반경도 넓어졌고, 덕분에 삼 십대 내내 서울과 지방 도시를, 이웃 국가와 이국의 도시들을 가로지르며 예술적 여정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삶을 이어올 수 있었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기댈 곳 없는 기획자 삶 속에서 ‘공모’, ‘심사’, ‘레지던스’, '리서치 트립’과 같은 말들이 일년 단위의 계획을 세우고 무너뜨리는 특별한 의미가 되고, 온 계절을 지배하는 질서가 되어 가는 시간들을 통과하고 나니, 비로소 담담해 진 요즘이다. 새삼, 인정을 쟁취해내는 일련의 과정이 두려워진다. 정확히는 모든 것이 성가시다. 이런 것이 ‘번 아웃’일까 싶다. 설명하기 힘든 소회를 단지 직업적 소진으로 결론짓기에는 감정의 격랑이 제법 드세다. 내 것이 아니었을 수 있을 기회를 온전한 내 것으로 소화해 내는 과정은 (단계적으로) 달콤, 짭짤, 살벌, 처량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첫 두 세 해 동안은 준비한 것들을 바탕으로 어딘가에 지원 하는 것 자체에 설렘이 있었다. 동일한 조건의 지원 제도 안에서 새로운 전시 인터페이스를 제안하고, 글과 말로써 누군가를 설득하고, 예술적 방식으로 스스로를 입증해 나가는 재미가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헌팅이나 오디션에 빗대기도 하지만, 제도를 학습하고 그것을 요사스럽게 부리는 과정이기도 했다. 멋 한 바가지를 퍼부은 기획서에 잔뜩 취한 채, 최종 제출을 위한 클릭의 순간을 즐겼던 때가 있었노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다 지원금 신청 대신, 자비 프로젝트를 해본 경험도 있다. 경쟁 피티, 집행 정산과 맞바꾼 것은 완전한 자율성이었지만, 매일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채워 넣느라 더 바빠진 고단한 일상이었다. 6년차가 되어서야 기획자에게 선택과 포기가 같은 말임을, 받는 것과 주는 것이 결국 등가임을 현실자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경쟁에 내모는 구도에서 건져내고, 지원 자체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여러 해에 걸쳐 집중 단련해 온 직능적 판단과 관성을 억제해 나가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삶을 지탱해온 조건 전환이 필요함을 무겁게 직감하고 있다. 소모해버린 지력을 회복하고, 예술적 조로를 지연시키기 위해서 온전한 안식과 새로운 경험 수혈이 필요하다. 물론 준비없이 다가오는 삶을 제대로 경영한다는 것이 매해 두렵고 걱정된다. 기댈 곳이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해가 바뀌면 지원금 미터기는 여지없이 ‘0’점으로 리셋된다. 지원은 귀찮지만 기금은 받고 싶고, 돈은 받고 싶지만 귀찮은 일은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욕심과 윤리 사이, 좁혀지지 않는 딜레마다.
 
요컨대, 전시 기금을 비롯한 각종 공모 제도는 선불, 혹은 ‘선물’(先物)로써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취한다. 사회 일반의 노동은 대개 ‘후불’로 삯을 치르는 데 반해, 오직 예술인만 누릴 수 있는 특권적 복지이자 신뢰 기반의 정책이다. 즉, 공공 기금은 좋은 작업에 대한 보상금이 아니라, 우수한 작업 생산을 격려하는 지원 개념이다. 자본주의 전 영역의 작동 기제가 수익을 창출하는 논리를 향해 있을 때 거의 유일하게 예술계만이 그 반대편에 있다. 우리 대부분이 그런 특별한 지대 안에서 양해 받으며 일하는 것이다. 예술적 수월성에 근거하여 얻은 기회와 성취일지라도 문화예술 정책은 대체로 일방적 수혜인 경우가 많고, 그 안에는 복지적 성격이 존재한다.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길지, 명예롭다고 여길지, 기분 나쁘다고 여길 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렸겠지만, 해야 할 일은 명백하다. 어쨌거나 각자의 자리에서 작업을 발전시켜 가는 것이다.
 
작년부터 코로나 19로 인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문화예술 사업때문에 동료 예술인들의 지원 서류를 심사하거나, 예술 정책 및 공공 기금과 관련된 컨설팅을 할 기회가 나에게도 오고 있다. 생각이 복잡해진다. 예술을 표면에 내건 복지 사업이 더 많아졌고, 한 켠에서는 미술문화의 디지털적인 전환을 수용해야 하는 움직임이 가시화 된 것 같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그 어느 해보다 준비 안된 창작 아이디어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지고 있다는 인상도 받게 된다. 그러나 일렁이는 정책적 파고 안에서도 스스로의 역량과 작업의 아우라를 드러내는 일은 창작자들의 일이다. 다양한 것들 사이에서 적자(適者)가 되려면 우월해야 하고, 승자가 되려면 가장 우월해야 한다. 확률적으로 1000개의 서류 중 900개가 유사성을 띠고, 100개 안에서 극심한 경쟁이 발생한다. 예술계에서 경쟁을 촉발하는 작업의 원천적 질은 결국 작가적 성취에 해당한다. 바깥에서 오해하는 것처럼, 그 과정에서 소수의 목소리가 지배적이거나, 몇몇이 합세하여 권력자에게 기회를 몰아주거나, 의심스러운 작업을 수호할 여지는 없다. 가장 좋은 작업이 곧 이유이자 결과인 것이다. 심사의 과정이 더 공정하고 합리적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 시스템이 내 것을 뽑아주는 것은 않는다.
 
지원 제도에 복속되지 않고, 경쟁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는 예술인의 삶을 잠시 잠깐 꿈꿔 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생태계로부터 아주 멀어지지 않는 한 그렇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예술적 명성은 없다. 편안하게 누릴 수 있는 예술 복지라는 것도 허상이다. 고마워해야 할 대상도, 비난해야 할 대상도 특정하지 못한 채, 제도와 관계 맺으며 매번 관계를 고쳐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예술 동네에 기회가 매번 솟아나고, 어느 곳 보다 관대한 세계라는 점만은 커다란 축복이다.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해 어수선한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월간 사진 3월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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