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못했던 내일 할 일
- 전시의 교집합을 건너뛰어
미술의 공집합 사이로 걸어가기
글 조주리
매일같이 쏟아지는 전시 소식 앞에서 느끼는 감정의 양상은 크게 세 가지다. 혹시 남들은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것’을 나만 놓치고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못난 불안감, 그런데 막상 그것이 그것인 것 같은 전시에 대한 피로감, 그리고 동형의 전시 만들기에 은근히 가담하고 있다는 자기 혐오와 연민이다. 꼭 맞닿아 있는 세 갈래 감정의 진폭과 온도는 24시간이면 휘발되는 SNS 스토리 같다. 미술과 전시, 기획과 창작 사이를 오가며 꽤나 분주했던 지난 몇 해를 떠올리며 생각해본다. 끊임없이 썼다 지웠다 새로운 기록들로 뒤덮이고 마는 팔림프세스트(Palimpsest)가 바로 오늘날 미술의 풍경인 것일까. 쓰는 것보다는 지우는 일에 열심인 필경사가 내 모습인 것일까 하는 자성과 함께.
누군가로부터 부탁 받은 일과 스스로 궁리해 낸 일들을 교차해 나가는 일의 구동 방식이 최근 몇 년간 크게 좌초되지 않고 용케 생존 중인 것. 미술 현장의 가장자리로, 가장자리의 바깥으로 떠밀려가지 않은 것에 안도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 겨우 ‘생존’해 낸 만큼의 내가 하는 일의 너비와 무게를 거둬내고 나면 ‘지금 나는(우리는) 어떤 시류 위에 올라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하는 막막한 질문이 다시 고개를 쳐든다. 분명 충분히 분투했다. 그렇지만 ‘분투’의 알리바이가 일의 윤리가, 창작의 철학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 않아도 문제 없었을 일, 안했다면 좋았을 일, 했어야 했지만 쉽사리 포기해버린 일들을 하나, 둘, 셋, 복기해 본다. 겨우 한 개인이 뛰어다닌 일의 반경이 현장의 이야기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거기에 콩알만한 시사점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난 몇 해 마음에 담아두었던 현장의 조각들을 이어 맞춰보고자 한다.
오늘날 시각 예술을 중계하고, 다른 무엇인가로 교환하는 장소들은 성업 중이다. 팬데믹 기간 중에도 전시의 동세는 오래 멈춰 서거나, 멀리 사라진 적이 없다. 예술의 탈을 뒤집어 쓴 선심성 예술 기금과 복지정책이 쏟아진 지난 두 해 동안 전시의 숫자는 기이할 정도로 증식되었고, 미술관 지도 또한 확장되었다. 그것이 실체적 진실이 아닌 심상에 가까운 통계라면극적으로 멈춰선 여타의 예술 분야와 대조를 이뤄서 일지도 모르겠다. 미술은 언제나처럼 대의 조건과 상황을 맹렬하게 빨아들여 새로운 조형의 미감과 의제들을 맹렬하게 산출해냈다. 팬데믹의 창궐과 인류세의 종말에 대한 냉소와 집단적 무기력이 미술관을 채웠고, 한 쪽에서는 회화와 조각으로 대변되는 전통 매체가 오늘날 세대에 의해 어떻게 재 창안될 수 있는지에 관한 근본 쟁점이 활성화되었다. 커다란 발도장을 찍으며 기세 좋게 뻗어나가는 미술관의 공룡화 현상(비근한 예로 서울 내의 대표적 공공 미술 기관인 SeMA, MMCA의 단계적 확장과 기능 분화), 사방팔방에서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미술 공간의 잔흔들, 언제나 팽창 중인 것 같은 착시를 주는 기획자 집단의 출현과 업계 종사자들간의 ‘좋아요’ 네트워크가 이를 입증한다. 전시와 미술, 미술과 미술관, 기획자와 창작자가 등가의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체감되는 감각은 그러하다. 어디선가 막히고 억눌린 만큼 또 다른 곳에서 동량의 말과 이미지로 솟아오르는 힘을 지난 삼 년 간의 ‘피드’를 통해 더듬어 본 감상이다. 멈추지 않은 미술 엔진은 다행이지만 좀 질리는 기분이 드는 복합적 마음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정황, 즉 내 경험을 놓고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코로나 19가 전세계적 확산 국면으로 공식화되었던 2020년 초를 시작으로 최근 완만한 종식 단계를 희망하는 ‘엔데믹’ 단계에 이르는 이년 반 남짓 나는 1인기업 혹은 소상공인의 신분으로 총 스무 곳 이상의 문화예술 기관의 발주 및 의뢰를 바탕으로 일해왔다. (*각양각색의 문화재단 및 법인으로부터 의뢰 받은 기획전, 홍보전, 회고전, 서울시 문화본부의 공공사업 진행, 국공립 미술기관과의 협업, 상업 에이전시와의 공조, 대형 미술 행사의 외주 제작과 미디어 솔루션 제공, 보고서 작성과 같은 연구 용역과 미술(적) 텍스트 생산에 이르는 일련의 과업을 수행한 바 있다.) 가파른 속도로 밀려오는 일들을 ‘쳐’ 내온 일의 실체란 어제의 전시는 오늘의 전시가 밀어내고, 다음 일은 그 다음 일이 밀쳐내는 구도에 다름 아니었던 것 같다. 주기적으로 지독한 번아웃이 왔고 이 일들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되뇌곤 했지만 휴식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초연해지기란 꽤 어려운 일이다. ‘일은 많은데 일이 없는 것’ 같은 기이한 공백의 감정은 미술에 대한 소외감, 실질 가치보다 비대해진 전시의 액면에 대한 두려움, 자기부정의 감정과 두루 맞닿아 있다.
역설적으로, 재난 국면은 기획자로서의 업무량과 역할 범주가 크게 팽창되는 시기였다. 끊임없이 추격해 오는 일에 대한 정확한 납기일 준수와 그나마 선량한 자세로 마감해보려고 했던 일들에 대한 보상들은 대체로 초라했지만 그럼에도, 일이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때이른 후일담을 꺼내 드는 일은 분주했던 삶을 과시하거나 혼란기 동안 겪었던 미술계의 구질함을 토로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다. 그보다는 미술계 아르바이트의 종착역이기를, 공공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그림자 노동자이기를 기꺼이 자처해왔던 나의 기획 노동이 속한 세계의 속도와 방향을 현실적으로 점검하고자 하는 뒤늦은 마음일 것이다. 非미술적인 매너와 상투적 미감/마감 안에서 겨우 갈무리되곤 했던 기획자로서의 경험을 너무 상세히 묘사하지는 않는 선에서 이 일에 대한 짝사랑과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존경심을 수호하고자 한다.
질문을 바깥 방향으로 넓혀본다. 미술관 (예술 기관의 대표격으로의 통칭)은 무엇을 하는가? 전시는 무엇을 전달하는가? 기획자는 어떻게 연구하고 상상하는가? 창작자는 어떻게 생산하고 실천하는가? 관람객은 어디서 반응하며 무엇을 전달받는가? 일련의 질문들은 마치 ‘나’는 꽤 잘 했는데, ‘당신’들은 무엇을 못 했는가 따져 묻는 것 같아 민망하고 부끄럽다. 다시 질문의 초점을 어제, 오늘, 내일의 비근한 이야기로, 구체적 인격과 의지를 가진 인물들(즉, 기획자들)로 좁혀 본다면, 그것은 결국 나 자신에 관한 질문으로 되돌아오고, 힘들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미련스레 꼭 붙들고 있는 ‘이놈의 미술’에 관한 이야기가 되어 우리를 덮친다. 멀찍이 보면 많은 것들이 발전했고, 면밀히 들여다보면 어쩐지 후퇴한 것 같은 미술계의 풍토 속에서 나는 시류의 한 점이 되어 오직 나만을, 내 일만을 다시 생각해 본다.
첫 전시를 기획했던 십년 전 여름처럼 나는 여전히 배회 중이다. 그때는 일과 미술 사이의 거리가 한없이 멀어서였고, 지금은 지나치게 가까워 진 탓이다. 어느덧 전시 기획이나 평론을 쓰는 일은 가끔씩 도전하는 취미가 아닌 완벽한 일이 되어 버렸고, 생계를 이어나갈 좋은 방책이 되었다. 기획이 취미나 놀이에 가까웠던 무렵은 전시의 교집합을 피하려고 무던히 애썼던 시간이었다. 프리랜서 기획자로 일해온 지난 십년 간 조금이라도 나를 나답게 규정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정 중앙을 향해 달려가는 것보다 가장자리로 우회하고 반대로 튕겨나가는 반동의 힘이었다. 준비 과정에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두려워하고, 한없이 몰두했던 일들이란 그러한 태도 안에서 모의되었던 소동들이었다. 그러나 일말의 경험이 쌓이고, 주변상황을 돌아볼 최소한의 눈치가 생기는 사이, ‘정전’으로부터 구분되고자 했던 ‘사파’로서의 욕망은 다양한 감각으로 세분화되고, 때마다의 미세조정을 겪어왔다. 조정 버튼이 자주 눌리다 보면, 비슷한 속성값이 모여있는 교집합 안에서 안전하게 기거하며, 강력한 것들에 착종된 형태로 들러붙고, 어느 순간 동일화 된 모습을 인정하게 되는 시점이 온다. 사회적 재난과 경제적 위기는 그러한 보수성을 변명하기 좋은 합리적 핑계거리가 되어 준다.
미술 전시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속에서, 그것을 나름의 동력으로 활용하여 제멋대로식의 큐레이팅을 시도했던 즈음 나는 작가가 인지하지 못하는 작품의 기원에, 고유하다고 믿는 미술적 진위의 허상에, 미술관이 갖고 있는 제도화된 공간 정치와 고상한 글쓰기의 권위에 소심한 생채기를 내고 싶었다. 합의된 약속들을 파기하고, 가볍게 건너뛰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전시보다는 창작의 기원을, 완성보다는 과정의 불투명함을 지지했고, 작가의 고유함이나 조형을 수사하는 마법적 언어보다는 실체적인 제작의 서사가, 방법론의 확장이, 세상사의 역동성이 오히려 상수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한 믿음 위에서 추진했던 여러 일들의 실패와 보완 과정을 거듭해오며, 그러나 나의 일들은 무엇 하나 선명하게 해결된 적이 없다. 그런 것을 보여주기에 전시는 좋은 매체가 아님을 금세 깨닫게 되었다. 이유는 끝없이 많다. 리서치 역량의 부족함 탓에, 어긋난 소통과 협력 관계 때문에, 도저히 싸움 상대가 될 수 없는 관료제적 질서 안에서 헛발질을 하느라, 요즘 미술에 대한 감이 없어서… 무엇보다 하나 하나 완벽한 노력을 쏟을 만큼의 시간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핑계가 다양해지는 동안, 나는 자본주의 세계에 적합한 품성의 기획자가 되었다. 길거리 아무 곳에나 들어가 앉아 다급하게 평론을 써내고,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을 기획의 언어를 압착해내고, 클라이언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일꾼. 그 사이 공백은 서서히, 빨리, 아주 빨리 다가온다.
여전히 나는 오늘날의 전시 수준과 작품의 생산/소비 주기, 기획자의 존립 조건에 불만투성이인 큐레이터이자, 뮤지엄 고어(goer)이자, 크리틱 생산자다. 그 비판정신이 온전히 나에게로만 쏠려 있다면 좀 더 훌륭한 큐레이터가 될 수 있었겠지만, 알면서도 실수하고, 어쩔 도리가 없어 수긍하고, 인지상정으로 일하는 무리의 일원이 되어 버렸다. 최근에도 나는 기회가 닿는 한 많은 전시를 본다. 남의 영화는 물론 자신의 작품도 잘 보지 않는다는 유명 감독의 이야기는 그가 고전 문법을 오래 전에 체화시켰고, 그 자신이 하나의 장르적 인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거장다운 여유일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전시와 작품을 보지 않는 날은 드물다. 그렇지만, 전시를 보는 일은 낮은 확률의 인상적 경험이 되어 버렸다. 작품을 ‘본다’의 용례는 너무나도 확장되어서, 그것이 진실로 본 것인지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것이 꼭 디지털 플랫폼이나 생성형 데이터로 접속했는가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늘날, 예술과 예술적인 것, 기획된 상품이 선사하는 예술적 몰입 경험, 실물과 이미지 사이에 놓인 감각적 분할과 제도적 위계는 너무나 미묘하고 복잡한 구도 안에서 서로를 착취하고, 학습하며, 서로를 투영한다. 이를테면, 전시를 본다는 일은 그런 복잡함을 일부러 들여다보고, 오늘날의 문화적 교착 상태를 추론하여 분리시키고, 재통합해보는 일종의 괴취미같은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일들의 틈바구니에서 매번 예술적인 일을 도모하고, 예술적이지 못한 과정을 방어하고, 결과를 변명하고 옹호하며, 때로 과시한다.
무엇이든 적당히 먼 거리에서 보면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매해 어디선가 부각되어 확고해지는 경향성이나 그 다음 해에 슬며시 사그라드는 맥(脈)이나 모드(mode) 같은 것들이다. 때마다 시의성 넘치는 소재와 주제, 담론과 철학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구조를 십년, 오십 년, 백 년 단위로 묶어 놓고 조망해 본다면, 아마도 그것은 언제나 돌고 도는 패션 유행의 주기, 일찌감치 정해버린 올해의 컬러, 코드화된 멜로디의 구조와 진행, 번갈아 나타나는 문명의 우화와 재앙 같은 일들일 것이다.
팬데믹이라는 상황 코드와 최근 한국 미술계의 표준분포 안에서 활발히 생산되고 공유되었던 동종의 것들, 손쉽게 엮여있는 작품의 군집들, 서로가 서로를 살피면서 유사한 어휘록을 만들어 내는 일들. 모험이나 위험이 결여된 그런 속성을 ’교집합’이라고 칭할 수 있다면, 이제 그 시간을 빠르게 ‘패싱’하여 각자만의 세계로 분산되는 때를 다시 한번 노려보자고 말하고 싶다. 미술관에서 미술로, 미술에서 작품으로, 작품에서 생각으로, 생각에서 태도로 좁혀지고 다시 드넓어지는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무엇인가를 바깥으로 출력하여 내보내기 전에 한번 꽉 붙잡고 있기를. 하지 않고서도 열심히 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다짐해 본다.
저 한없이 펼쳐진 미술의 공집합으로, 우선 나부터 엑소더스!
내일부터. 아니 오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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