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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믿 Feb 01. 2024

플러팅은 아닙니다만

진짜로

해명을 위한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에서 글을 써 봐야지.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다. 생각만. 그렇게 불길이 사그라들 무렵 누군가 기름을 들이부었다. 같이 실습을 나가던 조원이었다.


“혹시 플러팅 하는 거예요?”

머리가 하얘졌다. 정곡을 찔려서도 아니고, 싫어서도 아니었다. 단순히 플러팅이 뭔지 몰라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 집에 와서 검색해 보고 뜻을 알았다. ‘상대방을 유혹하는 행위’


그런 말이 나오게 된 경위는 이렇다. 얼마 전 인스타를 교환했다. 그러나 나는 글을 업로드하지 않는다. 단순히 그 애의 ‘스토리’를 눈팅만 했다. 나는 ‘스토리’를 올려본 적이 없어서 누가 자기 스토리를 봤는지 확인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그 애는 그냥 눈팅이 지속되자 장난식으로 던져봤던 셈이다.


아, 허둥지둥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헤어졌고, 계속 눈팅만 하다가는 그림이 이상해지겠구나. 바로 사진과 함께 짤막하게 글을 써서 올렸다. 나쁘지 않았다. 머릿속에 떠도는 파편을 엮어 글로 표현하는 행위가 즐거웠고, 소수지만 내 글을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퍽 보람찼다.

권강범 on Instagram: "인간은 존재하는 것에 이름을 붙인다.


글이 점점 쌓였지만 계정의 성장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진짜 게시물만 올렸다. 해시태그 하나도 쓰지 않았다. 불만족스러웠다. 나 혼자만 만족하는 글을 양산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분위기를 바꿔서 글을 쓰기는 부끄러웠다. 계정을 하나 새로 만들어야지.






좀 제대로 해보자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다가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글빵사. ‘글빵사’는 어떨까. 매일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글자로 구워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지만 일단 진행시켰다. 트레이 위에 올려진 사진 그리고 오븐의 모습, 마지막에는 글자. 이렇게 3장의 이미지를 올리고 밑에는 글을 써 내렸다.

글빵사 on Instagram: "- 프린터가 죽었다. 


시간이 지나자 미흡한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썸네일이 너무 난잡했다. 각각의 요소가 흐트러져 집중할 수 없었다. 게다가 트레이 위에 올라간 사진은 너무 작아 보기 힘들었다. 글의 제목, 키워드를 보기 위해서는 오른 엄지를 두 번이나 움직여야 했다. 난잡한 트레이와 오븐을 거쳐야 비로소 등장한다.


리뉴얼을 거쳤다. 배경에는 버터를 뜻하는 노란색, 글자는 짙게 구워낸 빵을 닮은 갈색으로 심플하게 썸네일을 만들었다. 소통에도 적극적으로 임했다.  해시태그를 타고 들어가 댓글도 달고, 좋아요, 팔로우도 했다. 그러니 더디지만 팔로워 숫자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글빵사 on Instagram


언제 즈음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략 팔로워가 100명은 넘었고, 게시글도 50개가 넘어가던 순간이었을 터다. DM 하나가 도착했다.


브랜드 스토리 의뢰였다. 브랜드 스토리? ‘브랜드’와 ‘스토리’는 알지만 ‘브랜드 스토리는’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알겠다고 답했다.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해도 괜찮았다. 유의미한 경험이 되리라 짐작했다.

대략 50~60%는 완성되어 있고, 자료도 모두 준비되어 있다. 다듬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아하. 문장을 다듬기만 하면 되는 일이구나. 간단하게 받아들였다. 


순간,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진실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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