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은 축복일까
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이 쓴 '한국이 싫어서'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주인공 계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설정인데, 나 또한 40대가 넘어선 이후 겨울이 너무나 길고 힘겹게 느껴진다. 특히 새벽에 일어나 아침 8시 전에 출근해야 하는 생활을 20년 가까이 이어가면서 추운 겨울 출근하려고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일은 너무나 고역이다.
어린 시절 배웠던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은 더 이상 장점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온난화로 겨울과 여름이 길고 봄과 가을은 너무나 짧아져 더 그렇다. 봄과 가을용 옷은 1년에 입는 기간이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듯하다.
이번 여름휴가는 필리핀 보라카이로 다녀왔다.
누군가 "이 더운 여름에 왜 열대지방으로 휴가를 가느냐"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꿈꾸는 휴가는 하얀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바로 앞에 큰 수영장이 있는 호텔에서 묵으며 매일 바다와 수영장을 오가며 물놀이를 즐기는 것이었다.
여기에 호텔과 해변 주변에 식당과 상점이 많아서 짧은 동선으로 즐길 수 있으면 금상첨화. 이런 곳은 한국에선 흔치 않고 매우 비싸다.
제주도를 수도 없이 다녀왔지만 해변이 있으면 바로 앞엔 호텔이 없고, 호텔이 있으면 식당이나 상점이 없거나 해변이 없다. 뭔가 하나 빠져있고 다 갖춰진 곳은 매우 비싸다. 이는 강원도나 다른 휴양지도 마찬가지.
아무튼 보라카이가 내가 원하는 삼박자를 모두 갖췄다고 판단돼 휴가지로 결정했다.
보라카이의 단점은 우리나라에서 직항이 있는 칼리보공항이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칼리보공항에서 내려 차를 타고 1시간 40분 정도 가야 인근 선착장에 도착하고, 다시 배를 타고 10분 정도 가야 보라카이섬에 도착할 수 있다.
보라카이섬에선 다시 삼륜차인 툭툭이나 승합차 등을 타고 호텔로 10~15분 이동해야 한다.
처음엔 1시간 40분 차 타는 게 뭐 대수일까 싶었지만, 고속도로가 아닌 2차선의 구불구불한 국도 수준도 안 되는 도로를 달리니 멀미가 날 지경.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4시간 20분, 다시 차로 1시간 40분, 배로 10분, 다시 툭툭 타고 15분 등 대기시간 포함 7시간 이상 걸려 호텔에 도착하는 힘든 일정이었다.
숙소로 잡은 헤난 가든 리조트는 큰 수영장이 3개나 있고 열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테라스 전망도 훌륭하고 해변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통로도 있었다.
보라카이는 7월이 우기라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리긴 했지만, 오히려 낮 기온이 27~29도 정도로 한국보다 훨씬 시원했다. 어차피 물놀이가 보라카이에 온 목적이라 비가 오는 것은 큰 상관이 없었다.
낮에 비가 올 때 리조트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있으면 추위가 느껴질 정도로 선선한 날씨.
내가 왜 진작 이런 곳에 오지 않았나 후회가 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