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한 셋째 날
아침 산모의 안부를 물었다. 식사는 잘하는지 건강은 회복되었는지. 순산의 덕으로 빠른 회복을 보인다는 말에 감사 기도를 드린다.
오후 1시 아이가 부모 곁으로 오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더 예뻐진 아이의 사진이 들어왔다. 오늘도 여전히 포근히 잠자는 모습이다. 한쪽 눈을 살포시 뜬 모습이 새롭다. 외할머니께서 아이 이름을 짓기 위해 철학관을 다녀오신 날이다.
친할머니인 내가 할 일인데 경험이 없다. 철학관을 가본 적이 없으니 어디가 좋은 지를 알지도 못하고 찾아갈 곳도 없어 난감해 사돈께 미뤘다. 아들 결혼 날짜도 사돈이 잡았기에 그 일도 더 잘하실 것이 분명했다.
작명은 사실 아이 아빠인 아들이 이미 선택해 놨다. 꿈에서 아이 이름이 나왔는데 그 이름이 좋아서 잠이 깨자마자 기억해서 적어 뒀었다며 내게도 괜찮은지 물었다. 한자 세대인 내가 이름에 맞는 한자를 몇 개 찾아 뜻을 살려봤지만 전문가의 풀이가 필요하다는 의사를 존중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좋은 이름이라며 맞는 한자 표기를 찾아 주었다. 혹시라고 이름을 바꿀 것 같으면 선택할 수 있게 10개의 이름이 더 적혀 있어 전문가 상담의 의미를 살린다.
내가 자녀 이름을 지을 때는 부르기 편하고 예쁘다 싶은 것으로 정해서 옥편에서 한자를 찾아 출생신고를 했었다. 하지만 손주는 나만의 혼주가 아니라 양가의 의견을 존중하니 훈훈하고 든든하다.
이름은 2만 번을 불러주면 복이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작명가의 말이 귓가에 울린다. 예뻐서 많이 부르게 될 이름 아닌가. 이제 태명을 내려놓고 이름을 불러야겠다.
아이의 태명이 부르기 좋았다. 엄마의 성과 아빠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 '박식'이. 부를수록 박력이 있어 좋았다. 야무진 아이가 태어날 것 같은 힘찬 이름이어서 많이 불렀었다.
이름을 지어오셨다기에 안사돈과 통화했다. 종교를 가진 지는 불과 십여 년인데 나는 철학관을 멀리 하고 살았던 탓에 그 문화가 많이 서툴다. 이제는 천주교를 따르고 있으니 더 멀리하고 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는 풍습도 존중한다. 그래서 고마움을 전했다. 아기가 조리원을 퇴소하는 날 아들 집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돈과도 전화할 일이 자주 생겨 좋다. 며칠 전 며느리의 선혈 소식, 출산 날도 함께 축하 전화를 했으니 자주 음성을 듣는다. 아들을 둔 엄마보다 딸을 둔 엄마가 더 자상한 것 같다. 딸의 출산 기미가 보인다는 전갈에 먼 길 달려와 딸을 챙기고 출산 후 꽃다발까지 챙긴 엄마이니 말이다. 나도 딸이 있으니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오늘은 아기가 엄마아빠 앞에서 응가를 했다. 아빠가 응가를 처리하는 동영상이 왔다. 정말 서툴기 이를 데 없다. 새 기저귀를 넣고 응가한 기저귀를 뺀 뒤에 응가를 닦으니 새 기저귀에 묻어버렸다.
'이를 어째' 동영상을 보면서 혼잣말이 나온다. 눈에 띄는 한 가지 응가를 닦는 티슈가 궁금하다.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물었다. 아기용 물티슈란다. 가급적이면 가제수건을 물에 적셔서 사용하라고 했더니 '열성적인 할머니란다.' 내가 아이돌보미를 10년 넘게 하고 있으니 아는 것이 병인 것이다.
차츰 알고 터득할 텐데 미리 한 것이 성급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린 피부에 청결한 물티슈라도 염려스러우니 어쩌랴.
오늘도 우리 아이는 여러 사람의 집중을 받으며 하루 동안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