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날과 일정이 바뀐 날이다. 하루 휴가를 냈다. 1박 2일 일정이 있었는데 변경되어 허무한 하루가 될 뻔했다. 그 틈을 비집고 새로운 일정이 생겨 그 일을 수락했다. 그 일로 장거리를 다녀와야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났더니 카톡방에 문자가 가득하다. 심야에 아들며느리 딸이 함께 주고받은 내용을 확인한다. 아침 운동을 하려다가 오늘 멀리 다녀올 것을 생각해 체력을 아낀다. 코로나로 정지되었던 편지강좌가 있는 날이다. 오랜 공백으로 준비물 중 빠진 건 없는지 자꾸만 기억을 더듬어 본다.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아기 사진만 거듭 열어본다. 조리원 옆 방에 금줄이 처져있다. 오랜만에 보는 금줄이다. 금줄을 살피니 신생아가 아들이다. 오랜 풍습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다. 이렇게 풍습을 이어가는 것이 사람 사는 모습이다.
우리 아기도 첫이레가 되었다. 아기를 낳고 3주는 금줄을 치고 외부사람을 들어오지 못하게 했었다. 세 이레가 지나면 금줄을 걷고 아이 보러 오는 손님을 받았었다. 이런 기억은 어머니께서 동생을 낳았을 때 본 기억의 한 부분이다.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도 금줄은 치지 않아 풍습이 사라지던 시기이다. 그런 금줄을 지금도 치는 가정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동행에게 아기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이도 딸이 결혼한 지 만 4년이 되었는데 아기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친정엄마지만 아이 문제에 대해 눈치만 본단다. 출산을 채근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친정엄마가 물어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 말이다.
슁슁 달리는 차창 밖에는 연둣빛 향연이 즐비하다. 꽃진자리에 녹음이 짙어지고 있어 산야가 풍성하다. 편지와 인연을 맺고 활동한 햇수가 두 자릿수이다. 이제는 이 일도 접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 중이데 현실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 이번이 마지막 출장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풍성해지는 봄철 들판을 바라본다.
다른 날보다 아이 소식에 뜸했구나 싶어서 영상통화를 했다. 마치 아기가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 영상으로 보는 아이는 어제와 다르지 않다. 오늘도 잘 먹고 잘 자고 있으니 더 야무져졌으리라.
리한 여드렛 날이다. 주말이 되니 산모 관련 프로그램도 쉰단다. 바쁜 시간이 무료함을 달래주는데 오늘은 어떻게 여가시간을 채울지 궁금하다.
토요일 봄 꽃구경 나선 나는 산모에게 미안해 스케줄을 안 밝혔다. 오후가 되어도 아이 소식이 오지 않아 궁금하던 차에 며느리에게 문자를 했더니 오늘은 1시 반부터 4시까지 '모자동실' 시간이란다. 오후 두 시쯤 아이가 한쪽 눈을 뜬 사진을 찍어 보내준다. 귀염둥이 그 사이 눈가 근육이 발달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눈 뜬 모습에 환호가 이어지니 눈뜬 동영상이 들어온다. 고개를 들고 한 바퀴 둘러보는 모습이 정말 기특하기 그지없다. 영상을 찍은 엄마의 환호도 '와'로 이어지는 걸 들으니 웃음이 난다.
기분 좋은 문자가 오가는 사이로 내가 임자도 튤립 구경한 사진을 몇 장 보냈다. 며칠 뒤 아이와 산모를 돌보러 가기로 약속을 한 터라 충전하고 그때 저축한 힘을 쓸 예정이라고 전했다. 귀가하여 저녁 모자동실 시간이련 싶어서 영상통화를 했다. 역시 아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가 칭얼대서 이름을 불렀다. 엄마가 전화를 받느라 자세가 불편해서 그러려니 싶어서 얼른 끊자고 했다. 잠시 후 아이가 응가를 해서 그랬다는 문자가 들어온다. 하필 그 시간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산모와 아이가 안정된 모습이라 내게도 편안함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