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내가 사랑스럽다

친구들과 짧은 여행

by 황점숙

해넘이를 보러 갔다. 일몰 중인 붉은 해를 모래사장과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오래 기억될 추억을 만들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예약한 일정이었다. 바다는 그대로인데 하늘이 수상하다. 해넘이 시간까지 확인을 했는데 구름에 가려진 해는 일찌감치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 코스로 빛축제장으로 갔다. 찬바람이 덜 물러갔는지 주차장이 텅텅 비었다. 어두워야 잘 보이는 빛 작품들이라 선명하게 빛을 내는 곳곳에 인파는 어둠에 묻혀 드문드문 보인다. 관람로 표시도 없다. 일행을 잘 챙기면서 발길 닿는 대로 한 바퀴를 돌았다. 두 번째 방문이어서 신비감이 줄었다.


낯선 고장이다. 가로등도 없는 국도에서 네비를 이용해서 순조롭게 찾아다닌다. 다행히 4개월 만에 다시 찾은 곳이라고 방향 감각이 선다. 운전하는 이들은 별도의 감각이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번 운전자는 가끔 오판을 한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서 진입을 잘못해서 길을 돌았던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시작부터 긴장하게 했다. 아래 방향으로 진입하려는 걸 막았다. 몇 바퀴 후진하고 정확한 방향으로 들어섰다.


불길한 예감 때문에 내 폰에서 휴면상태인 T맵을 켰다. 내 눈으로 봐야만이 안심이 되어서 이다. 어두운 길을 달리려니 더 불안하다. 덕분에 빛축제도 구경할 수 있음을 깨닫고 협조하러 네비 소리에 집중한다.


자동차 길도 지나치거나 잘못 들어서면 난감하다. 네비가 없던 시절 강원도에서 나 사는 곳으로 오는 차가 1시간 후에 있었다. 마치 1시간을 끌어당길 듯이 청주 사는 분의 차를 탔다. 그 도시에서는 차가 많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톨게이트를 잘못 진입해서 돌아 나오는 바람에 1시간이 늦어져 버렸다. 운전자는 우리를 2시간 거리를 데려다주고 가야 했다. 이십 년 전 일이다. 미안한 마음뿐 보답도 못하고 지금은 연락마저 끊겨 버렸다. 받은 선행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 보은이 된다는데 그럴 기회가 있을지 묘연하다.


친구들이 있어서 좋다. 나의 내면에서 설움이 올라와 분위기를 망가뜨리면 어쩌나 조심스러웠다. 표정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몇 번을 다짐했다. 제법 성숙한 감정이 작동되었다. 혼자 동굴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분위기에 젖었다. 그러다 보니 기분도 밝아진다.


친구들의 고민은 건강과 자녀의 혼사였다. 16명의 자녀 중에서 9명이 결혼을 했으니까 7명이 남았다. 모두 제 할 일을 하는 젊은이들이니 우리의 기대를 채워주리라 희망을 걸었다.

또 다른 소망은 건강이었다. 각자 몸에 밴 스쿼트, 요가로 달련된 운동 습관을 드러낸다. 따라 하다 보니 가능과 불가능파로 나눠지면서 서로 요령을 전수받는다. 가끔 만나는 죽마고우들이니 체력도 비슷해야 하건만 다 다르다. 그동안 부린 만큼 닳아버린 몸뚱이, 방치한 만큼 굳어버린 유연성을 아쉬워하며 자극을 받는다.


친구가 내 손에 자기 손을 얹으면서 일을 안 한 손이라 곱단다. 그랬구나. 내가 친구보다 삶을 모질게 덤비지 않았었나 보다. 그래서 지금 내게 시련이 닥쳐 있는 걸까! 보이는 결과를 인정하면서 내 처지를 살핀다. 심장에 주름이 보인다면 아마도 내 것이 가장 쭈글쭈글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분위기에 맞춰 웃는 내가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