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자연휴양림에서
둘이 여행을 다녀왔다. 불쑥 떠나는 여행을 꿈꾸고 있었는데 실행하게 되었으니 내 일상의 변화를 실감한다. 멀리 사는 친구가 휴양림에 예약 대기 중이었는데 확정 안내를 받았다면서 함께 여행 가자는 제의를 받고 바로 승낙했다.
친구가 차량을 대여하고 운전을 맡기로 했다. 한 주 후 정오에 맞춰 약속장소로 가니 멀리 사는 친구가 벌써 와 우리가 탈 차량을 살피고 있다. 스마트 앱으로 전달된 차량 정보를 점검하더니 차 문을 열었다. 인계해 주는 사람도 없고 열쇠가 없이 스마트폰으로 차를 인수한다. 승차 전 차량의 흠집 있는 곳을 사진 찍어 전송하고 승차하여 운행기록 정보를 메모한 후 출발했다.
이틀 동안 우리의 동반자 차를 타고 국도를 신나게 달렸다. 새만금 바닷길을 한참 달리는 동안 우리의 대화도 물 흐르듯이 유유히 이어진다. 그 시간이 좋다. 둘만의 공간에서 소중한 일상을 털어놓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여행의 참맛을 만끽한다. 오랜만에 둘이 만났다. 서울과 전주 생활의 궁금증을 묻고 답하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여행은 함께 걷고, 대화하고,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숙소가 휴양림이라 우리가 저녁으로 먹을 것은 간단히 준비했다. 그 외는 맛집 기행도 할 계획이다.
아담한 숙소이다. 4인실인데 둘이 왔으니 맘껏 누리기 최적인 곳이다. 동쪽 창문은 울창한 푸르른 산을 품고 있고 다른 쪽 창문으로는 파란 바다가 가득 담겨있다. 우리는 전망에 취한 뒤 해넘이 시간을 파악하고 여장을 풀었다.
저녁 메뉴는 나물밥이다. 친구가 나물을 준비해 온다면서 비빔밥을 메뉴로 추천해서 좋다며 합의를 봤다. 때마침 시래기 밥을 넉넉히 지었다면서 밥까지 준비한다고 했다. 준비해 온 반찬을 냉장고에 넣던 동행이 시래기 밥을 빠뜨리고 왔다며 난감해한다. 아침밥 용으로 누룽지만 챙겨 왔으니 쌀을 마련하기 위해 장보기를 하러 다시 나갔다 오기로 했다. 친구가 내 짐에서 나온 넉넉한 누룽지를 보더니 그걸로 밥을 짓잔다.
“누룽지로 밥을 할 수 있을까?”
“실험해 보고 안 되면 물을 더 붓고 끓여서 나물 반찬으로 먹지.”
현명한 친구의 제안에 따랐다. 전기밥솥에 쌀로 밥을 하듯 누룽지를 넣고 물을 부어서 버튼을 눌렀더니 밥 지을 때와 같은 취사시간이 정해진다. 밥이 되는 동안 식욕을 자극할 정도로 냄새가 고소하다. 성공이다. 빛깔이 누르스름한 밥이 되었다. 내친김에 일찍 저녁을 먹고 해넘이를 보며 산책하기로 했다. 나물을 쫑쫑쫑 썰어서 준비해 온 양념장을 넣고 비비니 산채비빔밥 못지않다.
섬을 빙 돌아서 바닷가를 향해 도로 양쪽으로 숙소가 있다. 첫 방문지라 규모를 몰라 차를 타고 출발했다. 해넘이를 볼 수 있는 태양전망대로 오르니 바다 건너에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가 바다 위에 뜬 산처럼 펼쳐져 있다. 서쪽 바다로 기울고 있는 해는 잔뜩 낀 먹구름 사이로 겨우 모습만 보인다. 저녁부터 비가 예고된 날이라 하늘은 바다에 겁이라도 줄 양으로 먹구름을 드리운 채 성난 모습이다. 해가 사라질 때까지 서서 지켜봤다. 몇 달 전 태안 바닷가에서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넘어가던 해를 상기하며 일몰 순간을 즐겼다.
우리는 자연 앞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바쁜 일상을 벗어나 같은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좋은 인연을 말이다. 친구와는 십여 년 전 활동하던 단체대표로 처음 만났다. 태어난 곳이 동과 서로 다르다. 각자 다른 억양의 지방말을 쓰는 우리는 묘한 끌림이 있었다. 당시 모임에 참석한 내가 서울 지리가 낯설어하는 것을 눈치채고 고속터미널까지 배웅을 해 주던 그의 친절함, 시댁이 우리 지방이라는 사실까지 공통점을 찾아냈고 친구가 되었다. 서울에 사는 그의 집, 전주에 사는 우리 집을 오가며 사는 모습을 진솔하게 본 특별한 인연으로 깊어졌다. 지난겨울 나의 어려운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한달음에 달려와 준 친구에게 하소연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차로 섬을 한 바퀴 도니 금방 숙소 앞이다. 차를 주차하고 다시 산책로를 걸었다. 바다 쪽으로 이어지는 데스크 길로 가니 조명이 밝혀진다. 길 끝자락에 초승달 조형물이 불을 밝히고 있다. 먹구름으로 하늘의 별을 볼 수 없어 아쉬웠던 차에 조명 환한 초승달이 반갑다. 나무 그네 의자에 앉아서 바다 내음을 맡으며 풍경을 즐긴다. 다음 날은 바다 건너 섬에서 둘만의 여행을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