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이 막힌 길이었다

묵묵히 걷는 길이

by 황점숙

약속시간에 맞춰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종점인데 출발시간이 3분이 지나도 버스가 오지 않아서 다른 차를 탔다. 애초 가려던 길이 아닌 돌아가는 방향이라 시간이 어긋날 것 같아 맘이 조급하다. 다행히 차는 막힘없이 달린다. 마음은 바빠도 무르익은 봄 풍경에 잠시 불안도 물러선다. 목적지 부근에서 하차하니 훤히 뚫린 두 갈래 골목길이 보인다. 옳거니 지름길이구나 싶어서 가로지르면 훨씬 빠르겠다 싶어서 잰걸음으로 갔는데 막혔다. 다시 나와 또 다른 갈래길로 들어서니 이곳도 가정집 대문 앞 막다른 길이다. 심지어 폐가인 듯 마당 가득 잡동사니가 수북하다. 을씨년스러운 기분에 온몸이 오싹하니 반응하여 잽싸게 돌아섰다. 길은 어디나 통한다 싶어 앞만 보고 갔더니 막다른 길이다. 두 길을 오가느라 시간만 허비해 맘은 더 내달린다.


아는 길이 편하다. 조금 모퉁이를 돌아가는 것을 피하려고 지름길을 택한 것이 문제였다. 새로움을 찾는 호기심 덕분에 새 길을 알고 색다른 풍경에 맘이 즐겁기도 하다. 그러니 동네 한 바퀴 산책할 때도 새로 보이는 길을 걷는 편이다. 가끔 낯선 길에서 예쁜 담장과 살포시 내밀고 있는 고운 꽃을 만날 때면 보물을 찾은 듯 흐뭇함도 함께 품고 산책하기도 한다. 묵묵히 걷다 보면 길은 한 곳으로 통한다는 진리도 체험하게 된다.


걷는 것을 즐겨했는데 두어 달 동안 기피했다. 허허벌판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외롭고 고단한 시간을 헤맸다.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는 것을 좋아했건만 그것도 맘이 내키지 않아 멈췄다. 즐기던 운동도 아플 때는 쉬어야 한다는 말을 위로 삼아 긴 방황을 했다. 이제는 방황의 끝자락에 선 듯 자연 속으로 눈길이 간다.


은행나무 가지에 초록 눈이 봉긋봉긋 솟더니 아기손톱만 한 이파리가 피고 있다. 추위를 잘 견딘 삭막한 나뭇가지는 모두 봄 행진에 합류했다. 은행나무 이파리가 피어나는 것을 보다가 나도 화들짝 놀라 꽃향기를 따라 외출했다. 호랑가시나무가 깨알 같은 꽃을 나뭇잎 사이에 숨긴 채 활짝 피우고 진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한참 향기를 맡으며 호랑가시나무에 눈을 맞춘다. 세상 만물을 소생케 한 햇살로 등을 따뜻하게 쬐며 주변을 돌아본다. 샛노란 민들레가 담장 아래 즐비하게 피었다. 몇 발자국 더 걸어가니 주택가 사이에 텃밭을 일구는 도시농부가 밭고랑을 만들고 있다.


지난겨울 이 길을 오갈 때는 버려진 땅인 줄 알았다. 듬성듬성 쓰레기도 있고 인도와 경계지은 울타리도 무너져 동네 강아지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느새 울타리도 보수해서 봄바람만이 사이를 통과하여 일궈놓은 땅을 어루만진다.

십여 년 전 밭고랑을 고르며 봄맞이를 했던 때가 있었다. 목까지 덮은 모자를 쓰고 상추, 쑥갓 씨를 뿌리고 감자씨를 묻고 나면 고단함만큼 뿌듯함이 피로를 잊게 했다.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졌던지 몇 년을 지속하려니 나태해져 잡초와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텃밭은 울안에 있어야 한다. 조석으로 들여다보면서 움트는 것도 살피고 물도 주면서 자라는 것을 봐야 한다. 손주 크는 것을 보듯이 식물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결실을 맺을 것이다. 나의 텃밭은 자동차로 15분은 달려가야 하니 소홀하기 마련이었다. 밭고랑을 일구는 농부의 손놀림이 바쁘다. 나도 두 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쥐어 본다.


방향을 찾지 못하던 내가 내일을 설계할 때가 되었다. 봄이 가져다준 힘인가 보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의 정기를 받아 마음을 다스린다. 몇 달째 막힌 길에서 헤매었으니 이제는 내가 가야 할 길목을 찾아 들어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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