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간에 빠지다
할머니를 부르며 다가온다. “할미니” 말문이 열리면서 할미라 부르더니 할미니로 늘었다. 아이가 오는 시각에 담양기행 중이라 맞이하지 못했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할미니라고 말을 하더란다. 기특하게도 이곳이 할머니가 사는 곳이라는 걸 안다는 증거이리라. 아이들은 돌아서면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데 아니다. 오랜만에 만나도 그전에 했던 것을 다시 하자고 하는 걸 보면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영특함을 확인한다.
할머니를 만나자마자 손을 잡는다. 물풍선을 쥐는 것처럼 부드럽고 연약한 손이 내 손에 잡힌다. 어디론가 끌고 가는 아이를 따라가면 늘어놓은 장난감 앞에 앉는다. 같이 놀자는 의사 표현인 것이다. 아이는 오직 자기와 집중해서 놀아주면 대만족이다. 우리 집에 보관 중인 장난감은 몇 개 되지 않으니 같은 놀이가 반복된다. 트럭에 젠가를 싣고 몇 바퀴 굴러가서 우르르 쏟아 놓는 것이 놀이이다. 트럭에 짐을 싣도록 옆에 쌓아 주니 두 손으로 안아서 올린다. 하나씩 싣는 것보다는 한꺼번에 하면 빠르다는 걸 안 것이다.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하고 터득해 가고 있다.
다시 손을 잡더니 일어선다. 이번에는 주방 쪽으로 걸어간다. 물놀이를 하고 싶다는 표현이다. 식탁 의자를 끌어내더니 밀며 옮긴다. 걷지도 못할 때 시작했던 물놀이인데 기억하고 올 때마다 반복한다. 얼른 의자를 끌어당겨 싱크대 앞에 놔주었더니 전력을 다해 오른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있다. 의자를 끌어오는 일도 직접 하려 하고 의자 위로 올라오는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된 것이다. 이제 25개월 된 아이의 적극적인 놀이 방식이다. 수도꼭지를 열었다 잠갔다 하면서 뜨거운 물이 작동된 적이 있어서 ‘앗 뜨 하면 안 되지’하니까 주춤한다. 꽐꽐 쏟아지는 물줄기를 줄여보려고 살그머니 줄여 놓으면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힘껏 위로 올려 물줄기를 세게 만든다. 잠깐 놀다가 다른 놀이를 유도하면 물놀이를 포기하고 따라오는 모습도 귀엽다.
외출하면서 할머니가 보이지 않자 찾는단다. “할머니 챙겨줘서 고맙다” 내 마음을 전하면서 승차했다. 차에서 내려 내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곧 뒤를 돌아보며 “엄마아빠”를 외치면서 본능적으로 제 식구를 챙긴다. 넓어진 외부 환경에서는 누구와 밀첩 하게 있어야 하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조금 걷더니 엄마에게 다가가 안아 달란다. 가장 믿음직한 애착관계가 엄마인 것이다. 아빠가 차에서 킥보드를 꺼내오니 “카”를 외치며 좋아한다. 잔디밭을 오가며 즐겁게 논다. 비둘기가 잔디를 쪼으며 놀고 있으니까 “구구”하면서 다가간다. 아이의 손을 잡고 따라다니는 동안 나의 맘도 평안하다. 오로지 아이가 넘어지지 않도록 집중하며 안전만 생각하는 순간인 것이다. 조카를 오랜만에 만난 고모도 동영상을 찍는다. 푸른 잔디밭 배경의 영상은 사랑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긴다. 이 시간이 지나면 함께 공유하며 즐거움을 나눌 수 있어 좋다.
바깥 놀이를 하고 낮잠 삼매경에 빠졌다. 낮잠 시간을 잘 조절해야 저녁잠을 빨리 잔다. 집에 와서도 계속 놀겠다고 장난감을 챙기는데 온 가족이 잠잘 분위기를 조성한 뒤에 겨우 잠을 재웠다. 잠이 들면 꿀잠이다. 1시간 30분 정도 재우고 이번에는 깨우는 것이 임무다. 침대에서 자는 아이를 안고 내려와 노래를 불러주고 계속 말을 시켜도 눈을 뜨지 않는다. 잠이 충분하지 않다는 표현이라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다. 자정이 되어도 잠을 자지 않던 모습을 봤으니 모질더라도 깨워야 한다. 뽀시시 눈을 뜨고 기운을 차리는 모습도 귀엽다. 좋아하는 포클레인도 자고 일어났다고 하니 장난감을 만지면서 힘을 낸다.
“콩콩”한다. 계란프라이를 먹겠다는 표현이란다. 점심 먹을 때 배가 덜 고팠는지 먹지 않더니 이제 먹겠다는 것이다. 고향 집에서 챙겨 온 계란을 요리했다. 두어 시간 뒤에 저녁을 먹으러 간다고 하니 양을 줄여서 해주었다. 눈치가 더 먹고 싶어 하지만 중지했다. 두부와 계란을 잘 먹는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서 좋다. 한때 고기를 제법 잘 먹더니 이제는 주는 대로 골고루 먹는 편이다. 시금치나물도 잘 먹고 김말이 밥도 잘 먹으니 아이 엄마도 아이를 위한 요리를 제법 잘한다. 두어 시간 뒤에는 아이가 떠난다. 함께하는 동안 재미있게 놀아주고 싶어서 하던 놀이를 반복한다. 색연필과 노트를 챙겨 와 놓아주니 동글동글하게 그려 놓고는 ‘까까’한다. 사과를 까까라고 한다니 그것을 그렸다는 말이다. 잘 그렸다고 박수를 쳐주니 한 장을 넘기고 다시 그린다.
벌떡 일어나 작은방으로 가더니 컴퓨터 전원버튼을 누르고 온몸을 움직여 회전의자로 올라간다. 새로운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컴퓨터를 켤 줄 알다니. 할머니를 또 놀라게 한다. 의자를 잡아 주니 등받이에 기대 앉아 화면을 바라본다. 아이가 좋아하는 영상을 보여달라는 표현이다. 텔레비전을 보겠다고 하여 틀 수 없다고 했더니 또 다른 방법을 직접 찾았다. 이번에는 거부할 수 없어 포클레인 영상을 찾아 보여줬다. 조금 보다가 다른 것을 본다며 정확하게 자기 의사를 밝힌다. 다행히 잠깐 보여주고 포클레인 놀이를 하자고 하니까 따라 온다.
도미노 놀이, 트럭에 짐 싣기, 포클레인으로 짐 옮기기가 반복되지만 아이는 한참을 논다. 반복되는 과정에서 보다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으리라. ‘찰칵찰칵’ 시곗바늘 소리가 색다른 게 들렸는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시계는 아침부터 똑딱똑딱” 손유희를 하면서 노래를 불러주었더니 손동작을 따라 한다. 노래가 끝나면 다시 시계를 가리키면서 다시 할 것을 주문한다. 시계 노래를 들으면 할머니 집 거실에 있는 시계가 생각나리라.
안전하게 놀다가 아이는 떠났다. 돌아가는 차에 할머니가 타지 않자 자꾸만 부른다. 맘 같아서는 빈 의자에 앉아 따라가고 싶어진다. 다시 만날 때를 기다리며 아이에 빠이빠이를 하며 헤어지는 시간임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