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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지석 May 22. 2019

#10. 군대와 피로

번 아웃을 유발하는 정신적 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군대와 사회에서 느끼는 피로는 확연하게 다르다.

어깨에 곰이 올라 타있는 것만 같은 피로감은 군 복무를 하면서 쉽게 이길 수 없었고, 윗사람들은 인내와 끈기라는 미명으로 해결하길 바랐다. 사회인이 된 지금도 출근길에는 카페인이 듬뿍 담긴 아메리카노와 에너지음료를 달고 살지만 기분 탓인지 예전과는 다른 다름이 있다.


피로는 어디에서 오는가?

군 복무를 할 당시에는 당연한 줄 알았던 일들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여유라는 눈이 뜨여 많은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당직근무는 피로감의 원천 중 하나다.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최소한의 인원으로 국가 안보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당직근무를 하면 밤을 새웠기 때문에 다음날 휴식이 주어져야 하지만 부대 사정이 있거나 업무가 있으면 당연히 휴식은 보장되지 못했다. 36시간 연속 근무가 당연하게 요구되기도 한다.


최근엔 군대 내에서도 당직근무에 대한 부담을 해소하고자 많은 시스템 변화와 휴식 여건이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아직 부족한 건 사실이다. 당직근무만 없어도 군 복무 할만하다는 간부들의 의견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Call Phobia

'차라리 한 대 맞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수도 없이 할 때가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폭언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적, 한 번의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상급부대 참모라는 이유와 아랫사람이라는 이유로 폭언이 정당화되던 격오지(GOP) 중대장 시절이 있었다.


스마트 시대에 사람과 사람과의 접촉이 소원해지면서 생겨나게 된 신조어 콜 포비아와는 조금 다른 의미의 전화 공포증을 느낀 적이 있다. 격오지(GOP)에서 근무하던 때는 정말 많은 폭언을 수화기 너머로 들었다. 당직근무를 설 때면 꼭 새벽에 업무를 하는 작전과 참모들이 있었고, 새벽에 담당자가 없어서 알 수 없는 업무협조 내용을 당직자가 모르면 여지없이 수화기 너머로 폭언이 넘어왔다. 자기가 급하다고 새벽 2시에 대대 작전과장 깨워서 물어보라는 상식 밖 요구도 있었다. 이런 이슈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덧 나에겐 전화 벨소리가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이 있듯이 주말이나 퇴근 후 부대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반갑지 않았다. 희(喜) 소식은 무소식을 동반하지만 반대로 비(悲) 소식은 전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전화받는 건 정신적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콜 포비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순간 업무에 익숙해지고 전화를 받다 보니 요령이 생겨 자연스럽게 극복한 것 같다. 웃프게도 그 배경에는 강제로 타인에게 세뇌된 군대식 인내와 끈기가 있었지 않았나 싶다.




최근 전역하고 새로운 영역에서 새 출발을 하고 있는 지금 친한 동기와 멀어진 동기들 연락을 가끔 받는다. 전역을 하고 운 좋게 바로 새 출발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다른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어느덧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을 준비할 시기가 되니 내 친구 S 대위는 전역 생각이 굴뚝같다고 한다. 진급이 걱정되고 시간과 업무에 쫓기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정신적 피로감이 육체적 피로감을 넘어서는 고통이라고 한다. 과거 내가 갖었던 시스템적인 문제와 콜 포비아를 그대로 겪고 있었다.


열정적인 초급간부 시기를 겪고, 불꽃같은 OAC를 거쳐 혈기왕성한 중대장에 뛰어들었지만 무엇 때문인지 그는 한순간 번아웃에 빠졌다.

생각해보면 훈련과 강한 체력단련이 피로감을 유발하지 않았다. 피로는 무엇보다 생산성 없는 상태와 비효율적인 시스템에서 초래되었다. 지금 와서 보면 군대와 사회의 피로의 차이는 여기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군에 남지 않고 전역을 생각 중인 동기 친구들의 연락이 반갑기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번 아웃된 그들의 청춘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그리고 사회에 첫 출발점에 선 나도 이런 피로감이 혹시 다시 오게 될지 두렵기도 하다. 항상 즐겁게 산다는 것은 쉽게 말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 표현하기엔 어렵다.


그래서 항상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게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직장을 떠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떠난다.
* 출처 : 태도의 품격 - 로잔 토머스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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