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by 사단화

소실과 소실



언젠가 누군가의 손이 불에 덴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당신의 체세포는 소실(燒失)이었던가, 소실(消失)이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불과 맞닿던 그 찰나의 순간 체세포는 외마디 비명을 외치며, 하늘을 향해 승화되었다. 1000℃를 넘는 화마는 하늘 향해 달려가는 체세포를 있는 힘껏 활활, 비웃었다. 그렇게 당신 손의 일부는 죽었다. 화마의 비웃음이 잦아드는 시간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당신에게 새로운 벗, 고통이 찾아왔다. 단박에 흐르는 물을 향해 두 다리로 달려가 두 다리와 관련 없는 손을 그곳에 포갰다. 그 짧은 순간, 긴 일련의 과정. 소실은 그렇게 찾아왔다. 잠깐의 소실을 되돌리는 시간은 오롯이 당신 몫이었고, 결코 짧을 수 없었다. 치료와 회복, 재활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50% 정도의 승화된 체세포를 대체하는 새로운 새싹, 긴 각고의 시간에 비해 성과는 크지 않았으리라. 그것이 소실일까.


당신과 사라짐



4년 전이었다. 나의 할머니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제 삶을 병과 함께하게 되고, 가족들도 할머니 존재가 버거워 요양원 입원을 결정했다. 말이 입원이지, 사실은 위탁이었다. ‘위탁’이라는 말을 이런 상황에 사용하지는 않겠다만, 나의 작은 눈에는 분명 위탁이었다. 간단한 행위인 머리 감기, 밥 먹기, 대소변 가리기 생명으로서 해야 할 작은 행위 자체를 위탁했다. 당신은 생전 처음 본 환경에서 새로운 손길에 모든 것을 맡겼다.

요양보호사. 요양과 보호를 목적으로 그분들은 노인을 돌본다. 요양이라 함은 ‘휴양(休養)’하면서 조리하여 병을 치료한다는 의미인데, 그분에게 그것이 요양이었을지…. 의문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해소되었다. 마음의 상처는 시간으로 치유된다던데, 결코 당신의 상처는 그러지 않았다. 치매란 녀석은 침투한 사람의 신체 능력이 약해질수록 강해져서 할머니는 병과 싸울 힘을 잃고, 점차 본인의 주변부터 잊길 시작했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기 주변 사람들의 관계는 어떠한지, 자식들의 나이는 얼마인지, 누가 살아있고 죽었는지, 낳은 자식이 누구인지, 자식이 있는지…. 그리고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말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불행하게도 기억을 잊는 것뿐이 아니었다. 몸도 기억과 함께 조금씩, 그 병마에게 갉아 먹히고 있었다.

내가 힘들고 외롭던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술을 나눈 적이 있다. 같은 날 취기를 핑계로 노부는 과거 일을 회상했다. 그곳에서 할머니는 대장부였다. 일제강점의 시기, 할머니는 시찰하러 온 한국인 순사를 집에서 내쫓은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신의 큰 몸으로 막대기 하나를 들고서, 가족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반면 할아버지는 여리고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신 바람에 직접 나의 눈으로 보진 못했으나, 사진 속 할아버지를 볼 때면 충분히 그런 사람이겠거니 싶은 인상이다. 그와 피는 섞였지만, 마음과 감정이 섞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런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항상 순종적이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외조(外助)할 정도라고 했으니.

할아버지 사후 할머니는 당신의 막내아들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자식들은 자수성가해서 머나먼 서울로 떠났고, 남편은 하늘로 여행하여 외로웠기에. 이미 당시 막내아들, 나의 막내 친삼촌은 이미 성공하여 부유하게 살고 있을 때였으므로 할머니는 집에서 쉬면 되었다. 그저 ‘요양’하였으면 되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았다. 왜 굳이, 어째서….


상경과 리어카



그 큰 손수레와 큰 손수레만 한 몸을 이끌고 온 동네를 누비는 파지 수집가가 되었다. 온종일 크기, 모양 그리고 재질이 다양한 종이를 손으로 집고, 포개어 블록을 맞추고 최대로 양을 늘려서 고물상에 그걸 내어주면, 퇴계 이황이 그려진 지폐 몇 장을 받는 게 전부였다. 충분히 안다. 당신에게 돈과 시간은 충분했다는 것을. 그러나 이미 충분히 노쇠한 몸인 것을. 그럼에도 자신이 필요한 존재임을 끊임없이 증명하려 하였다.

다행히도 하늘도 충분히 노력했을 당신의 인생에 축복을 내리듯 많은 자녀를 허락했다. 5남 2녀, 전쟁 후 농촌에서의 삶이라 남자아이의 탄생은 집안에 큰 힘이 되었다. 그 당시 5남, 모두가 건강하게 자랐으니 얼마나 스스로 큰 기쁨이었겠는가. 7명의 자식은 또 성장하여 그들의 자식을 낳았다. 많은 손주가 태어났다. 그중 나도 포함되었으나 나는 할머니에게 단순한 손주 중 한 명인 것은 아니었다. 네 번째 아들이었던 아버지는 할머니가 특히 아끼는 아들이었고, 그 아들의 유일한 아들인 나는 그저 태어남으로써 빛났다. 지금 생각하면 다른 많은 사촌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특별했다. 호탕했던 성격에 호탕하게 아끼는 손자, 기억에 영원히 담아둘 손자, 그게 나였다.

2012년 6월, 그때는 내가 군에 입대하고 꼭 1년이 되던 년, 달이었다. 상병으로 막 진급하고, 휴가를 나오자마자 할머니를 만나러 작은삼촌 집으로 갔다. 평일 오후 시간인 탓에 집은 비었고, 할머니 혼자 걸음걸이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나를 반겼다. 그러고 나면 두서없고, 쳇바퀴 도는 당신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전라도’, ‘함평’, ‘아버지’, ‘작은삼촌’과 같은 주제로 똑같은 플롯의 반복. 방금 말했던 것인데, 분명.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할머니가 점점 지금까지 함께 사는 유일한 벗, 치매에 기억력을 뺏기기 시작한 것은. 상태는 쉬지 않고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전역 이후 어느 날 삼촌네의 1박 여행 일정으로 할머니 혼자 그 집에 남았기에, 당신을 지켜보기 위해 그곳에서 잔 적이 있었다. 잠이 든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이른 아침, 부산스러운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익숙하지 않은 천장이 나를 반겼고, 이내 더 시끄러운 소리가 귀를 쳤다. 거실로 나가보니 이것저것 차려진 찬들과 전기밥솥이 지은 밥이 놓여있었다. 할머니가 만들어낸 불협화음. 다 탄 음식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먹었다. 반찬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하나, 하나 다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요양원으로 들어갔다. 당신은 이제, 대장부도 자식 많은 다복한 사람도 아니게 되었다. 그곳에는 강한 모습의 당신도, 당신을 돌보는 자식도 없었다.

지난 4년 동안 세 번의 이사가 있었다. 당신은 세 번이나 요양원을 옮겨 지냈다. 그러면서 치매는 성장하고, 몸은 약해졌다. 90년 넘는 당신의 인생이, 단 4년 만에 철저하게 부정당한 것이다.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큰 손수레만 한 몸은 뼈밖에 남지 않았다. 저작 운동은 저 멀리 사라졌다. 머리는 감아도 항상 한 방향으로 눌려있었다. 기억을 잃어 자신이 누군지,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다. 아기는 탄생 4개월 만에 뒤집기를 한다지만, 당신은 4개월이 된 아기 몸보다 힘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거친 숨을 내뱉는 것뿐이었다.


경험과 되돌리지 못하는 것



나에게 외조부도 외조모도 친조부도 더는 없다. 남은 조부모는 유일하게 그녀. 그러니깐 친조모가 유일하다. 1923년 돼지띠 나의 할머니는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2년 넘게 누워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볼 때 알 수 있는 것은 딱 한 가지이다. 당신은 분명 아파 보인다. 아니, 아프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할 방법조차 잊어버렸다. 심장은 뛰지만, 당신은 뛰지 못한다. 눈은 점점 작아지다 못해 감긴다. 키와 몸무게는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 손과 발은 반점으로 뒤덮여가면서 제 색을 잃는다. 다리는 감각과 함께 기능을 잃는다. 입술도 이와 함께 사라져간다. 손가락에 힘이 빠져 환자복의 끝을 잡기도 버겁다. 그리고 나와 함께 본인을 잊는다.

소실(小失)이었던가, 소실(消失)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운명의 부름, 소천이었던가. 빠르게 자라는 상처꽃 탓에 나는 벌써 당신이 그립다. 언젠간 나와 당신의 인생이란 선 끝에서 만나는 심미적인 소실점에서 재회하기를 목 놓아 바랄 뿐이다. 우리의 삶은 결코 평행하지 않기에. 연장선은 한 점으로 모이므로. 아마도 그 기다림은 마치 긴 일련의 과정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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