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by 구기리

이성과 감정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이성은 '현실적 조건'을 타이틀로 달고 출전했고, 감정은 '그 사람 자체'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준혁은 이 길고 긴 싸움의 끝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만 그 결론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덜컥 겁이 났다.

현실적인 조건을 배제하면 그녀에게 끌리는 감정은 진심이었다. 분명했다. 그럼에도 주춤하게 만든 것은 그녀가 가진 배경이었다.

나이.

나이가 중요할까. 준혁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녀의 적지 않은 나이가 그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이 증명한 노산의 나이. 통계와 확률과 위험도. 그것이 그녀에게 다가서는 것을 멈추게 했다.

그렇다고 이성을 배제하고 감정대로 움직이려니 그 결말이 벌써 머릿속을 한바탕 휘젓고 지나갔다. '결국은 나이로 끝이 날 것 같은 그런 결말.'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을 보는 것. 이것이 합리적인 판단일까, 비겁한 회피일까.

한편으로 준혁은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남자에게도 나이는 중요하다. 앞으로의 만남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그렇기에 여자에게는 그 소중함이 곱절이 된다. 그렇다면 애초에 아니라고 생각이 들면 시작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상대를 위해서도 최고의 배려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핑계 같았다. 그녀가 좋지 않아서 그깟 나이로 핑계를 짓는, 그런 파렴치한 사람 같았다. 진심은 그녀가 좋은데 용기가 없어서 나이를 방패 삼는 비겁한 사람 같았다.

준혁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삶을 살아왔다. 어떤 고민이 생기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경우의 수를 만들어냈다. 치열하게 싸웠다. 이성과 감정을, 확률과 가능성을, 현실과 이상을. 그렇게 결과를 도출했다.

이런 방식이 우유부단함으로 보이기도 했다. 친구들은 말했다. "그냥 해봐. 생각이 너무 많아." 하지만 준혁은 그럴 수 없었다. 생각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모든 가능성을 따져보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따져보고 움직였는데도, 삶은 준혁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쩌면 삶은 계산이 아니라 도약이었는지도 몰랐다. 준혁이 서 있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것은 수만 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발을 내딛는 것이었는지도.

준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야 했다. "다음 주에 시간 되세요?"라고. 혹은 "죄송하지만 제가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라고.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준혁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성과 감정의 줄다리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줄다리기가 끝나지 않는 한, 준혁은 계속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이었다. 움직이지 못한 채.

나이는 핑계였을까, 진짜 이유였을까. 준혁은 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비겁한 사람인지 직면해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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