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by 구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은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친척들이 모여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관 앞에 엎드려 울었다. 고모들이 울었고, 작은아버지 댁 식구들이 울었고, 먼 친척들도 울었다.

민수는 구석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침묵으로 일관했다. 주변을 의식해서 눈물을 흘리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감정조차 들지 않았다. 그만큼 민수는 할머니와 왕래가 없었을 뿐더러 정조차 깊지 않았다.


오히려 원망이라는 감정이 더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원망은 어린 시절부터였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유난히도 모질게 굴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지, 원망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어린 민수에게도 비록 단어는 몰라도 원망이라는 감정 자체를 알게 해주었으니까.

여섯 살 때였던가. 할머니가 엄마에게 밥그릇을 던졌던 날을 민수는 기억했다. 밥이 모자랐다는 이유였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바닥에 흩어진 밥알을 주웠다. 민수는 그 광경을 부엌 문틈으로 지켜보았다. 엄마의 떨리는 손을. 엄마가 흘리는 눈물을.


돌이켜보면 엄마도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참으로 힘들게 살았다. 스물두 살에 결혼했다고 했다. 그때 할머니는 쉰이었다. 할머니는 지긋이 옛날 사람이었다. 남아선호사상을 지향했다. 그랬기에 엄마가 첫 아이를 배에 품었을 때부터 엄마는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누나였다. 딸이었다. 그것만으로 엄마는 죄인이 되었다. 아버지도 참 잘못했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그럴 때면 중간에서 말렸어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장남이었다. 어머니였다. 그 두 단어 앞에서 아버지는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

그 시대는 다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아픔을 속으로 참아내며 살아냈다. 엄마도 그렇게 살았다.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는 변했다. 나이가 들면서 뒤늦게 깨달은 것일까. 아버지는 엄마에게 미안해하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엄마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마는 과거 그대로였다. 항상 과거의 기억에 얽매어 살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당한 일들을. 아버지가 지켜주지 않았던 순간들을. 잊지 못했다. 아니, 잊을 수 없었다.

그랬기에 가족도 금이 갔다. 부모님은 5년 전부터 별거를 시작했다. 엄마는 작은 원룸을 얻어 혼자 살았다. 민수는 가끔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는 그때마다 과거 이야기를 했다.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민수는 듣는 척했다.


그랬기에 민수는 할머니에게 잘 가라는 작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관 앞에 서지도 않았다. 과연 할머니는 마지막 가는 날 엄마에게 미안했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했을까. 민수의 의문증만 더 커졌을 뿐이다.


엄마가 빈소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였다. 검은 상복을 입고 있었다. 엄마는 천천히 관 앞으로 걸어갔다.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가시는 길에 예를 갖췄다. 절을 했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그것도 퍽이나 시리도록 서럽게. 소리 내어 울었다. 온몸을 떨며 울었다. 한겨울이었다. 한파 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엄마의 울음은 그 한파처럼 차가웠다.


민수는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자신에게 호되게 굴었는데 미우나 고우나 정이 되는 것일까. 애증의 관계, 뗄 수 없는 관계가 인연인 것일까. 엄마가 이렇게 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이 힘들어서 울 곳이 필요했던 것일까. 아니면 기댈 곳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속죄의 의미였을까. 자신도 좋은 며느리가 되지 못했다는 자책이었을까.


민수는 알지 못했다, 그 울음의 의미를.

다만 엄마의 울음 속에서 괜스레 민수까지 울컥해져 왔다. 엄마의 삶이 그러했기에. 20대 초반에 시집와서 평생을 참고 견디며 살았던 엄마의 삶이. 민수는 빈소 밖으로 나왔다. 찬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연기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장례식장 주차장에는 차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몇몇 서성이고 있었다.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민수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끊으려 해도 끊어지지 않는 것, 미워하려 해도 미워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인연이라는 것. 그리고 그 인연 속에서 사람은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 마치 오랜만에 친가쪽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뜨는 것처럼. 그리고 아버지를 만난 엄마의 모습도, 아버지의 모습도. 어색했지만 서로를 의식하는 모습도. 인연이라는 게 그렇게 쉬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가족도 그렇다는 것을.


빈소 안에서 엄마의 울음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민수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연기는 추운 공기 속으로 흩어져 갔다. 사라졌다. 하지만 엄마의 울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민수는 담배를 비벼 끄고 다시 빈소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곁으로 다가갔다. 엄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엄마는 민수를 올려다보았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괜찮아요?"

민수가 물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민수도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보았다. 단촐한 영장 사진 하나. 엄마를 그토록 괴롭혔던 사람이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다는 게 이상했다. 그때 민수는 문득 깨달았다. 할머니도 누군가의 며느리였다는 것을. 할머니도 시집와서 그렇게 살았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고통을 엄마에게 대물림했다는 것을.

인연이란 그런 것이었다. 미움도, 사랑도, 고통도, 용서도 모두 대물림되는 것. 그리고 그 대물림 속에서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얽혀 살아가는 것.


민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민수는 엄마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따뜻하게 해주려고.

엄마가 민수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었지만, 분명 웃고 있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한파가 몰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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