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대체적으로 고통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생각한 것은 영원함의 부재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영원할 것만 같은 행복은 실재했는지 조차 의문일 정도로 찰나처럼 지나가고, 서로가 없으면 죽을 것 같던 사랑도 불처럼 타오르다 재만 남는다. 필멸하는 존재인 내가 겪어야 하는 것이 지독하게 외로운 삶이라면 그것은 고통이라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통 속에서도 영원함을 갈구했다. 나의 이 평온함이 깨어지질 않길, 찰나의 행복을 온전히 지켜내길, 그 무엇도 변하지 않길. 모순에 모순을 더해서 제발 영원하길.
나의 염원을 비웃듯 평온함은 쉽게 깨지고, 찰나의 행복은 부스러지고,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더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변해가는 시간들을 견디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다 보면 마음속 어딘가에서부터 구역감이 올라오는데 그것은 생각보다 지독한 감정이라 사람을 쉽게 삼키곤 한다. 환멸, 무기력, 자책, 원망, 분노라는 감정들의 먹이가 되고, 결국 먹고 먹히며 죽어간다.
'삶을 조금 더 사랑했더라면 조금은 덜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아무도 찾지 않는, 파리조차 꼬이지 않는 산송장이 되고 싶진 않았던 걸까. 아니면 이 모든 선택의 결정권자인 나를 탓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내가 나에게 던진 그 물음은 희망, 행복, 자신감, 환희, 긍정, 사랑이라는 감정들의 씨앗이 되어주었다. 잘 가꾸면 끝없이 열매를 맺을 감정들의 씨앗을 품은 것만으로도 삶은 새로운 변화를 맞는다.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던 내가 변했기 때문에 살아간다는 모순. 역시 인생은 모순이다.
평온함이 깨어지면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찰나의 행복들은 포춘쿠키 같아서 내가 필요로 할 때 하나씩 꺼내내어 나를 버티게 해 준다. 영원하지 않아도, 그 어떤 것들이 변한다고 해도 내 삶을, 나를 사랑하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음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고여있는 물에 남아있던 물고기가 죽은 것을 본 적이 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완전한 바다가 아닌 천적도 변화도 없는 그 속에서 죽은 물고기를 보고 있자니 예전의 내가 생각이 났다. 두 손으로 물고기를 건져 바다로 보내주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나도 바다로 나아간다. 유속이 빠른 내 삶은 역시나 고통을 동반한 모순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영원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