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깎을 때가 되었다. 예약을 하고 미용실에 들어서니 언제나처럼 조용하다. 원장 혼자서 예약제로 운영하는 작은 미용실은 늘 적막감이 흐른다. 미용실 잡담을 선호하지 않아서 딱딱하고 거칠어 보이는 인상이 도움이 되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그 조용한 미용실 좌석에 꼼짝 않고 앉아 거울을 보는 것은 늘 생경하다. 낮은 음악이 흐르는 호젓한 미용실 좌석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오늘은 결혼식날 머리를 손질하던 모습이 거울 속의 나와 오버랩이 된다.
나는 천성이 독고다이였다. 장남을 선호하던 시절의 순한 막내아들은 집안의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과외나 학원은 얼씬도 안 했지만 학교성적은 좋은 편이었고 조용한 성격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늘 구석에 앉아 책을 읽고는 했다(어려운 집안 환경이었지만 다행히 책은 수북했다). 어렵게 밥벌이를 하시며 장남을 챙기는 부모님에게는 손이 가지 않는 순둥이 막내가 기특했겠지만 그런 이유가 더해져서 나는 늘 혼자서 스스로를 챙겼다. 알아서 숙제를 하고 알아서 시험공부를 하고 알아서 진학을 했다. 수학여행을 갈 때도 군대를 갈 때도 당일 아침에 다녀오겠다는 인사와 잘 다녀오라는 어머님의 답변이 전부였다. 대학 진학도 혼자 결정했고 직장도, 결혼도 혼자 결정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부모님이 막내에게 신경 쓸 겨를은 학비마련이 전부였을 것이다. 세월에 관성이 붙어서인지, 막내는 뭐든 알아서 잘한다는 믿음이 생겨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결정들은 당연시되었다. 다행히 독고다이의 결정들은 그럭저럭 큰 문제없이 잘 진행되었는데 결국은 결혼식에서 큰 펑크를 내게 되었다.
양가 부모님을 인사시켜 드리고 결혼 날짜를 잡았다. 사치나 허세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럴 여유도 없어서 평범한 결혼식장을 예약하고 제주도를 신혼여행지로 결정했다. 당시의 제주도 신혼여행은 택시기사가 가이드와 카메라 기사의 1인 3역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는데 독고다이에게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었다. 호젓한 빌리지형 숙소와 렌터카를 예약하고 큰 맘먹고 그럴싸한 카메라와 삼각대를 구입했다. 그 정도 1인 3역쯤이야!!
결혼식 아침에 일어나서 면도와 세안을 하고 머리를 감은 후 한 벌 뿐인 정장을 차려입었다. 가진 것 중에서 가장 화려해 보이는 넥타이를 목에 둘렀다. 30분짜리 행사에 턱시도 같은 것은 사치스러워 보였고 허세처럼 느껴졌다. 결혼식장 가는 길에 아내가 신부화장을 한다는 미용실에 들렀다. 원장이 신랑이냐고 묻고 그렇다고 하니 한숨을 쉬며 쳐다보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원장은 잠시 거울 앞에 앉으라고 하고는 혀를 끌끌 차며 드라이기로 잠시 머리 손질을 해줬다. 뭐, 거기까지는 큰 문제라고는 할 수 없었는데 정작 큰 실수는 스냅 사진사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었다. 혼자서 모든 것을 제멋대로 판단해서 모든 사진은 결혼식장 소속 사진사가 다 찍어줄 것이라는 판단착오를 한 것이었다. 지금도 결혼식 사진은 사진사가 머리통을 검은 헝겊 속에 넣고찍은 후 큰 사진으로 인화해 주는 "공식"사진만 남아있다. 결혼식 경험자에게 한 번만 체크리스트를 확인해 봤어도 되었을 일을 혼자서 다 할 수 있다는 건방을 떨다가 결국 사고를 친 것이다. 평생 한번 하는 결혼식에 아무런 추억 사진을 남기지 못한 아내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남의 조언도 듣고 때로는 남에게 조언도 하고는 하지만 결국 결정은 스스로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주문을 한다. 도와주고 조언을 해줄 수는 있지만 결정은 본인의 몫이라고..
스스로 결정을 해야 잘못된 결정이라고 해도 얻는 것이 생긴다. 그래야 결정의 힘이 늘어난다. 남의 결정을 빌거나 동전을 던지고 손바닥에 침을 튀겨 결정을 하는 것은 같은 실수를 번복하게 하고 나쁜 결과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결정장애자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독고다이는 결혼식 추억을 흘리거나 때로는 건방져 보이고 위험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길을 간다. 외로워도 뚜벅뚜벅..
덧붙임: 독고다이는 일본말이라 쓰지 않아야 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문맥상 필요하다면 일상화된 외래어를 쓰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필요하다면 적절한 속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