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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Sep 27. 2024

첫 만남

크리스티앙과 키캐

 어제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새벽빛이 밝아 오르기도 전에 차가운 공기를 들이키며 걷는다. 새벽길을 나서면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태양을 볼 때마다 마음이 웅장해지고 감격스럽기까지 한 찰나의 순간은 차가운 새벽 공기와 함께 산티아고를 걷는 또 다른 즐거움이자 선물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버려진 마을' 폰세바돈으로 향한다. 1960년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에도 산업화 바람이 불기가 시작하면서 이촌향도 현상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폰세바돈의 많은 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주를 했고 1990년대에는 어머니와 아들 단 두 명만 마을에 거주하여 '버려진 마을'이란 이름이 붙여진 슬픈 마을이다.  


 가파른 길을 천천히 올라가니 온몸에 땀구멍이 열리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차오른다. 헐떡 거리는 숨을 고르기 위해 카페에 들러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며칠 전 숙소에서 만난 프랑스 아저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오렌지주스를 주문하고 야외 테라스에 앉아 아저씨와 수다를 떨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그럼. 너는 어때? 붓기는 좀 가라앉았어?"

"무이 말.(안 좋아요.) 아저씨는요?"

"나는 아주 좋아. 페이스 조절하면서 걸어야 해. 아직 여정이 반이나 남았다고."


"감사합니다."


  말도 안 되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섞어 대화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다른 파라솔에 앉은 두 명 중 한 남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가벼운 눈인사와 어색한 미소로 인사하고 다시 프랑스 아저씨와 대화를 이어나가려는데 그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크리스티앙이고 여기는 제 친구 키캐에요."

 그는 책을 읽고 있는 키캐를 가리켰고 키캐는 시니컬한 손인사를 건넨 뒤 다시 책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아란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그는 영어로, 나는 스페인어로 서로를 소개했다. 통성명을 마치자마자 크리스티앙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영어를 못하는 크리스티앙은 키캐의 도움이 받아 대화를 이어나갔고 키캐는 원치 않는 대화에 억지로 참여해야만 했다.


"왜 산티아고를 걷고 있나요?"

"파울로코엘료 책을 읽고 걷기 시작했어요. 카미노를 마치면 제 인생이 조금 달라지길 바라면서요."


 크리스티앙은 '파울로코엘료'라는 말을 듣자마자 가방에서 '순례자'라는 책을 꺼내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우리는 레온부터 걷기 시작했어요."


 짧은 대화가 오갔고 오렌지주스와 함께 샌드위치를 아침으로 먹을 요량으로 가방에서 며칠 묵은 바게트빵과 햄을 꺼냈다. 손으로 빵을 뭉떵 잘라 햄을 넣고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데 크리스티앙의 시선이 또 한 번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살짝 미소 지으니 그가 치즈를 내밀며 말했다.


"치즈를 넣으면 더 맛있어요. 보나뻬띠.(맛있게 드세요.)"

"정말 고마워요."


 그가 준 치즈를 햄과 함께 빵 속에 넣고 샌드위치를 만든 후 그에게 한번 보여주었고 그는 환한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그가 건넨 치즈는 말라비틀어진 빵과 나의 마음을 따스하게 덮어주었다. 오렌지주스와 함께 샌드위치를 먹고 길을 나설 채비를 했다. 길을 나서기 전 치즈에 대한 보답으로 가방에서 비스킷을 꺼내 그들에게 건넸다.


"치즈 잘 먹었어요. 비스킷이에요."


 비스킷을 주고 길을 나서는데 그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가방에서 껌을 꺼내어 손바닥에 3개 놓아주었다.


"아란! 에너지!! 에너지!!"


크리스티앙과 키캐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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