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envenido!"
결전의 날, 더블린에서 런던을 경유하여 스페인 빌바오로 간다. 공항에서 하루 노숙을 하고 스페인으로 휴가를 가는 영국인들, 런던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스페인 사람들 틈 사이 검은 오리새끼처럼 비행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새벽 7시, 이른 비행으로 다른 승객들은 피곤함에 눈을 붙였지만 나는 두려움과 설렘으로 긴장한 탓에 잠이 오지 않았다. 창문 밖 비행기 날개만 바라보며 뒤척였다. 몸을 뒤척이다 고개를 돌리니 청록색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머리는 희끗하신 배 나온 스페인 할아버지가 나를 향해 빙그레 미소 짓고 계셨다. "올라!" 멋쩍은 인사와 함께 우리는 통성명을 했다. 할아버지 이름은 헤수스. 빌바오 출신으로 런던에 사는 여동생을 만나고 다시 빌바오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도착할 때까지 영어, 스페인어, 바디랭귀지로 대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왔고 지금은 아일랜드에서 어학연수 중이에요. 산티아고 도보순례를 하러 빌바오에 가요. "
할아버지는 '산티아고'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셨고 '맘마미아'를 외치며 이마를 탁 치셨다.
"맘마미아! 나도 산티아고 도보순례를 꼭 하고 싶었었는데.. " 말 끝을 흐리는 할아버지 얼굴에 깊은 슬픔이 묻어났다.
헤수스 할아버지는 60대 중반이셨는데 카미노 도보순례를 늘 꿈꿔오셨다고 했다. 30대 때는 돈을 버느라, 40대 때는 이혼 후 아들, 딸을 양육하느라 '꿈'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덧 머리는 희끗하고 배 나온 60대가 되셨다고 하셨다.
지금은 은퇴를 하고 여유가 생겼지만 2년 전 무릎 수술을 하셔서 '산티아고 도보순례'라는 평생의 꿈을 포기하셨다고 회한이 서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영어로 위로하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기에 "I am So sorry" 밖에 할 수가 없었다. 기내 공기는 상당히 무거워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만 같았고 영겁 같은 3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인생은 타이밍이 참 중요해.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야. 나는 그때를 놓쳤지만 너는 카미노데산티아고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
할아버지는 무거운 침묵을 깨고 애써 밝은 목소리로 나의 카미노를 축복해 주셨다.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꿈일지도 모르는 그 길, 왠지 모를 책임감이 생겼다.
런던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 후 마침내 빌바오에 도착했다. 헤수스 할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하고 40리터 배낭을 메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
HOLA! 스페인!
아침 10시였지만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의 빌바오.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숨 막힐듯한 더위가 스페인에 온 것을 환영해 주었다. 스페인에 왔다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했지만 카미노 시작을 위한 여정의 끝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지쳤었다. 론세스바예스로 가야했는데 워낙 작은 마을이라 빌바오공항에서는 론세스바예스행 직행버스가 없었고, 팜플로나에서 경유를 해야 했기에 팜플로나행 버스에 올랐다.
한국, 아일랜드와는 또 다른 스페인의 수려한 풍광이 버스 창문 너머로 들어왔다. 아름다운 스페인 풍경과는 달리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과연 이 길이 맞는 것일까?' 불안과 걱정 속 두시간 반을 달리고 달려 팜플로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런던 공항 노숙의 여파가 이제야 제 역할을 하는 것일까? 이글이글 내리쬐는 스페인의 태양이 자장가가 되어 나른함이 몰려왔다. '순례를 시작하면 어차피 팜플로나를 지나야 하는데 여기서 시작할까?' 내면의 악마가 상당히 달콤하고 세상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터미널에 앉아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내 등에 커다란 배낭을 본 2명의 순례자가 다가왔다. 내 안의 악마를 물리치는 주문을 걸 듯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론세스바예스까지 가시나요?"
"네. 그래서 버스시간을 알아보고 있었어요."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찌질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비겁한 거짓말이었다.
"저희도 알아보니 오늘 팜플로나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가는 버스는 없대요. 괜찮으시다면 같이 택시를 타고 론세스바예스까지 가시는 건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