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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Sep 04. 2022

벌초 가는 길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또 30분 늘었네


주말 아침,

6시 좀 넘어서 출발했는데

1시간이 지나도록 아직 고속도로에도 못 들어갔다.


내비게이션의 다시 보기를 누르자

당초 가려던 경부고속도로 방향이 아닌,

중부고속도로로 들어가는 곤지암 IC로 경로가 바뀌고

예상 도착시간이 자꾸 늘어난다.


작은아버지에게 약속했던

9시가 간당간당하다.


아까 커피 마시지 말고

6시 정각에 떠났어야 했는데,

제일 막내인 내가 늦으면 안 되는데...


충분히 맞춰 도착한다고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던 아내는

속도 모르고 태평하게 옆자리에서 잠을 잔다.


다 내 탓이다.

그녀에겐 도착 목표를 8시 반이라고 속이고

더 일찍 서둘러 떠났어야 했다.


서울을 빠져나가려는 차들이 점점 늘어난다.




9시 1분 도착


도착하자마자 산소로 갔더니

예초기 소리가 벌써 요란하게 들린다.


할아버지 형제의 자식들,

그러니까 내겐 오촌 당숙 뻘인 두 분과

작은아버지가 당신들의 고조부모까지 한꺼번에 모신

가족묘 벌초를 막 시작하신 모양이다.

 

시끄러운 소리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나는 눈치껏 갈고리를 들고

베어낸 풀들을 긁어 한 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큰 '헤어드라이기' 장비를 써서

말끔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이 마치 미용실 풍경 같다.


30분쯤 지났을까.


대장이신 작은아버지가 예초기를 멈추자

휴식시간이 되었다. 

료수 마시고 땀을 식히면서 장비 빨 얘기시작됐다.


일본산 엔진이라 힘이 좋다

플라스틱 날은 깎이는 맛이 없다

요즘엔 안사고 렌탈해 쓰는 게 낫다 등등


한참을 진행하던 각자의 품평회가 이번에는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 얘기로 이어졌다.


서로 사촌 간인 세 분은

희끗한 머리에 환갑을 넘어 칠순을 맞은 나이인데도

여전히 촌동네 까까머리들처럼 깔깔대고 즐거워하신다.


그러다 문득 멀리서 온 조카인 나를 의식한 듯

한마디 하신다.


우리야 이렇게 모여, 나눠하면 되는데

너희 세대는 어쩔지 모르겠다...


하긴,

큰아버지 아들인 사촌형도

작은아버지 아들인 사촌동생도

각자 사정이 있어 벌초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 혼자만 아들이 있다)


당신들이 더 늙어 쇠해지면

과연 나와 내 자식이 이런 벌초란 걸 계속해야 할까

돈 주고 사람 쓰면 될 것을 굳이 사촌끼리 모일까...

하는 걱정과 연민이리라.




미래 일을 누가 장담하겠는가.


하지만

사촌보다는 이웃사촌,

이웃보다는 우리가족,

식구보다는 나 자신으로 좁아지는 세상이다.


조상님도 마찬가지다.


고조와 증조를 알고 챙기는 시대가

이미 아니고,

얼굴도 몇 번 안 본 친할아버지보다는

어릴 때 키워주신 외할머니가 더 가까운 요즘 세대다.


5대 조부모까지 모신 가족묘를 돌볼

의무와 책임감을 가질 그들이 아니다.


나는 나중에 어디에 묻힐까 보다는

누구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생각해보게 되는

벌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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