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죽이다
대장내시경 검사 전날은
반찬 없이 흰 죽이나 미음을 먹으라는 가이드 때문이다.
3일 전부터는
씨 있는 과일, 깨, 잡곡류 등은 피해라 하길래
그동안 탄수화물 다이어트한다고 못 먹은 흰쌀밥과
국수나 빵 등 밀가루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어 좋았는데
막상 오늘 아침에 이어 점심까지
멀건 죽 한 그릇을 간장만으로 연신 먹으려니
마치 중병 걸린 환자처럼 기운도 빠지고 기분도 별로다.
하긴, 내일 모든 걸 쏟아낼 텐데
지금 아무리 좋은 걸 먹어봐야 무슨 소용일까...
알람이 울렸다
장세척 약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모든 걸 쏟아내던
젊은 시절 기억이 난다.
술을 맛이 아니라 양으로 즐기던 시절.
싱싱한 간을 믿고 벌인 한때 객기였는지
마음속 꽉 찬 답답한 응어리가 있었는지
토할 땐 고통스러웠지만
속을 다 비우고 난 후에 느끼는 개운함이 더 컸다.
그래서였을까...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건강이 영원할 것처럼
마시고 토하고
또 마시고 토했다.
어느덧,
오래 사는 것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죽는 게
가장 행복한 삶이란 걸 아는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제는 건강검진을 위해
모든 걸 쏟아내야 하는 장세척 과정조차
젊은 날의 폭음처럼 즐거운 이벤트로 느껴진다.
그나저나
술잔(?)이 작아져서 다행이다.
예전엔
30여 년 전 주말 '대학로 차 없는 거리'에서 마시던
커다란 막걸리통 하나 크기였는데
이젠
한 손으로 잡히는 하이볼 잔 크기로
4번 먹으면 된단다.
슬슬 한잔 마셔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