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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Oct 09. 2022

내 차에 귀신이 산다

신박한 기능의 발견

며칠 전 퇴근길,

아내와 함께 장을 보고 걸어오는데

날이 벌써 어둑해지고 있었다.


아! 그거 버려야지


아파트 주차장 옆 분리수거장을 지날 때

그녀가 차 트렁크에 둔 종이 쓰레기를 생각해냈다.


청주 내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대학시절 복사물 파일들을 재활용 처리하려고

서울로 싣고 온 터였다.


과거 시험문제 족보들과

누군가가 노트 필기한 풀이들을 복사해

플라스틱과 비닐로 된 파일에 꽉꽉 정리해 둔 것인데


시험 때 한번 제대로 공부한 적 없이

복사비만 수억 들어간 게 아깝기도 하고,

전자제품 하나 제대로 못 다루는 내가 그래도

한때 S 공대생이었다는 일종의 증거물 같기도 해서


몇십 년이 지나도록 못 버리던 애물단지였다.




종이와 파일을 분리해

한 뭉큼 버리고 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그때였다.


어? 저거 왜 그래


내 차의 라이트가 깜박거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헉!

4개 창문과 선루프가 모두 열려 있는 게 아닌가.


트렁크만 열었지 차에 탄 적이 없는데...

리모컨 키는 차 문 여닫는 버튼만 있는데...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미 날은 깜깜해졌고

옆에 아내마저 없었다면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른다.


잠깐 사이

차 도둑이 들었던 걸까


차가 오래되어

전자 장치가 고장 난 걸까


아냐,

방금 버린 종이 쓰레기에 붙어 있던 귀신이

왜 버렸냐고 전자파로 성질부린 걸지도 몰라


별의별 생각이 들었지만,

차분히 차에 타 창문과 선루프를 닫고 내리는

아내의 한마디에 웃고 말았다.


리모컨이 치매 걸렸나 봐


집으로 들어와 잠들기 전까지

계속 머리에서 맴도는 생각.


보이지 않고 돌아다니는 전자파처럼

귀신이 정말 있을지도 몰라...


얼마 전 아내가

자는데 현관 센서등이 아무도 없는데

갑자기 켜져 이상했다는 말이 왜 지금 떠오르는 걸까.


그땐 바람일 거라 했는데...




그다음 날,

자동차 마니아인 회사 후배에게 얘기했더니


차 문 열기 버튼을 두 번 연속(두 번 째는 길게) 누르면

멀리서 창을 모두 내려서 환기를 미리 해둘 수 있는

신박한 리모컨 기능이 있다는 정보를 찾아주었다.


그리고 주말인 어제,

아내의 참관 하에 실험을 했는데

지잉~하고 모든 창이 열리는 걸 확인한 순간.

와아~하며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귀신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정말 공대 졸업한 거 맞나...


https://brunch.co.kr/@jsbondkim/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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