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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Apr 18. 2023

녹사평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영어로

6호선 출근길,

자리가 비어 앉았는데 옆자리 젊은 여자가

말을 걸어온다.


유튜브 듣던 이어폰을 빼고 돌아보니 외국인이었다.


어디가 아픈가 싶게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데

술 냄새가 팍 풍기며 눈은 반쯤 감겨 있는 것이 아마도

새벽까지 진탕 퍼마신 듯했다.


"노샤피엉?"


혀까지 꼬인 영어 질문에 순간 당황했지만

그녀가 '녹사평'역에 내리려 한다는 걸 곧 눈치챘다.


"노!"

아직 '삼각지'역이라서 한 정거장이 더 남아 있다는

말까지 친절하게 덧붙여 주고 싶었지만

머릿속으로만 맴돌 뿐 영어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이렇게 한마디를 보탰다


"넥스트 스탑(next stop)."


그녀도 간신히 정신줄을 붙들어 대화를 끝냈다.

"땡큐"


그리고는 바로 고개를 푹 떨어뜨리더니

비틀거리는 몸을 내 쪽으로 기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깨워야 하나... 뭐라고 하지...


마음을 졸이며 긴장이 고조될 무렵

열차는 녹사평역에 도착했고

그녀는 방송 소리에 일어나 무사히 내렸다.


천년 만의 네이티브 스피커와의 영어 대화는

이렇게 딱 두 마디로 끝났다.



다행이다


이유를 물으면

토하지 않고 무사히 내려서라고 하고 싶지


불편한 실은

어려운 영어길게 물어보지 않아서가 맞다.


영어는 평생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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