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공원에서 영화를 찍다

부자유친 유럽여행 5일 차

by 본드형
파리에서의 마지막 산책


막 잠에서 깬 아들을 꼬셔서

숙소 근처 방센느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그림 같은 호수 주변으로

동화에서 나올 법한 오리 떼가 풀을 뜯는 풍경 너머

떠오르는 아침 해는 왜 그리 눈부신 건지...


런던으로 갈 기차시간만 아니라면

계속 머물고 싶은 파리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 팬크러스역에 도착했다.


파리에서 내내 까막눈과 귀머거리로 지내다 보니

여기저기 보이고 들리는 영어가

모국어처럼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워털루역 근처 숙소가 4시 이후 체크인이라서,

수제버거로 일단 허기를 달랜

인근 공원으로 가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파리 방센느가 동화 속 커다란 숲과 호수였다면

런던의 이 이름 모를 공원은 작은 잔디밭이 전부였지만


일요일 한낮에 건강한 청춘들이

한가로이 선탠을 즐기는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아들 녀석은 그 모습이 부러웠는지

한참을 바라보다가 스케치북에 풍경을 담기 시작했고

나는 에어팟을 꺼내 귀에 꽂고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검색해 익숙한 팝송을 골랐다.


음악의 힘이란 참 무섭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도시의 소음이 사라지고

앨튼 존의 피아노 전주와 함께

<Goodbye Yellow Brick Road>가 흘러나오자

세상도 음악을 따라 천천히 흐르기 시작한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나무들마저 함께 춤을 춘다.


기억 속에 꽤 오래 선명하게 남을

멋진 한순간이었다.



숙소는

런던아이가 보이는 도심 한복판에 있는데

무인으로 운영되어 셀프 체크인을 하고 들어왔다.


그런데

파리에서 온 줄 어찌 알았는지

파리 몇 마리가 우리를 반긴다.


런던의 첫날밤은 아무래도

그들과 치열한 한 판을 벌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