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의미 2

부자유친 유럽여행 4.5일 차

by 본드형
새벽 4시


어제 피곤에 절어

일찍부터 곯아떨어져서 그런지


아직도 시차 때문인지

또 새벽에 깨었다.


더 잘까 하다가

파리에서 마지막 밤이란 생각에

글이라도 써볼까 일어났는데

문득 냉장고에 사다 둔 음식들이 떠올랐다.


큰 통으로 산 생수 3병은

라면 끓여 먹고 커피 타 마셔서 거의 다 썼는데

나머지 것들은 어쩌지...


반쯤 남은 소주와 햇반은 어쩔 수 없이 버리고

믹스커피야 런던 갈 때 싸 간다 해도


와인과 먹으려고 산 '웃는 소' 치즈는 그대로 있고

캔맥주도 4개 중 하나가 남았다.


아들과 밤늦게 술 마시며 얘기하다 보면

모자라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과 욕심을 부린 내게 벌주는 심정으로

새벽 혼술을 또 시작했다.




창밖 가로등 불빛 아래

춤추듯 모여드는 하루살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여행 오기 전

매일 출퇴근하던 내 일상이 떠올랐다.


저 불빛이 전부인 양

더 가까이 가려고 아등바등 살았구나.

조금 어두우면 어때?

욕심 좀 버리면 주변에 큰 세상이 있는 것을...


이번 파리 여행은 사실

내겐 일종의 보상심리가 있었다.


15년 전 가난한 럭셔리 MBA 유학시절

못해 본 것들을 실컷 누려보겠노라


명품매장에 들러 쇼핑도 하고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최고급 프렌치 요리도 즐기리라


하지만 막상 Z세대 아들과 함께

변두리 레지던스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미술관에서 예술을 감상하고

공원에서 책을 읽거나 사색에 빠지며

에펠탑으로 가는 센강을 걷는 럭셔리한 경험들은

돈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왜 그땐 이걸 몰랐을까...


명품업이라는 화려한 불빛만 쫓던

욕심을 조금만 버렸더라면 누렸을 젊은 날의 호사를

이렇게 늦게라도 보상받으니 감사해야겠다.




이제 날이 밝으면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으로 이동한다.


SNS에 올린 내 사진을 보고

친구가 유학 중인 딸을 보러 런던에 온다는

반가운 톡을 보내왔다.


또 어떤 새로운 경험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이번 파리 여행은

오랫동안 내 안에 쌓인 '럭셔리'란 쓰레기를 버린

그런 개운한 날로 기억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