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엔 먹을 게 없었다

부자유친 유럽여행 4일 차

by 본드형

오늘 일정의 첫 코스는 '피노 컬렉션'이다.


구찌, 발렌시아가, 보테가베네타, 이브생로랑 등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케어링 그룹 회장이

자신의 소장품을 전시한 곳이란다.

(우리로 치면 이건희 컬렉션 같은 곳)


파리의 옛 증권거래소를

건축가 안도 다다미를 통해 미술관으로 바꿨다더니

돔형 구조의 웅장한 공간이 역시 돈냄새가 폴폴 난다.


예술에 문외한인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현대 미술품들 보단

심플하면서 모던한 화장실 변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점심은 이태리 파스타집을 찾았다.


원래는 유학시절 자주 가던 일본 우동집에 가려 했는데

날도 덥고 배도 고파서

피노 컬렉션 근처 맛집을 바로 검색했다.


음식 솜씨 좋고 인심 좋은 전라도 시골 아줌마 같은

주인이 추천해 준 화이트 와인에다

트러플이 들어간 파스타에 연어 샐러드를 한입 먹어 본

아들 표정이 그야말로 예술이다.


파리에 와서 먹어본 요리 중 최고라며

양 손가락을 모아 위로 들어 올리는 이태리 사람

흉내까지 낸다.


배도 부르고

술도 알딸딸하게 취해

기분이 좋아진 우리 부자는


그 길로 아이쇼핑 모드로 들어갔다.


LVMH가 최근 개장했다는 사마리텐 백화점 앞에는

90세 넘는 현역 아티스트인 쿠사마 야오이의

거대한 상이 눈에 들어왔다.


피노 컬렉션과 안도 다다미에 이어서

사마리텐 백화점과 쿠사마 야오이 조합을 보니

프랑스 명품의 최대 고객은 아직도 일본인인가 보다.


기대했던 사마리텐 백화점 내부는

의외로 한국 면세점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실망이었다.


이어서 퐁네프 다리를 건너

철학자들이 애용했다는 마고와 플로르 카페까지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를 걸어가는데

아까 마신 술기운까지 슬슬 올라와 지치기 시작했다.


관광명소인 카페에 도착했는데

빈 틈 하나 없이 꽉 찬 사람들을 보고는

아들 녀석도 현기증이 난다며 고개를 젓는다.


일단 철수~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축 늘어진 아들과 나는

유명한 백화점이나 카페 같은 관광명소는 역시

우리 취향은 아니라며


소문난 잔치엔 먹을 게 없다는

교훈을 잊지 말자 다짐했다.


역에서 내려 숙소로 걸어오는 길.


늙은 부부가 다정히 손잡고 걸어가고

동네 아이들이 물놀이하며 깔깔대는

모습이 보인다.


화려하진 않지만

진짜 럭셔리한 인생은 이런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