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문이 없어?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문대신 커튼이 쳐진 화장실을 보고는
아내가 화들짝 놀란다.
볼일 보는 소리마저 사랑스러운
부부나 연인만 오라는 의미인가...
찬찬히 둘러보니
심플하고 빈티지한 실내 공간이 재밌다.
하얀 벽돌로 둘러싸인 작은 스튜디오 안에
꼭 필요한 가구와 소품만 멋스럽게 배치되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욕실 밖으로 과감히 나와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큰 창 앞에
떡하니 놓여 있는 욕조다.
이 역시 화장실처럼
혼자만의 은밀한 공간에 있어야 한다는
내 고정관념을 확 깨는 아이디어다.
"와~ 욕조 안에 불도 들어와"
신이 난 아내가
마치 SNS의 유명 인플루언서라도 된 양
와인 잔을 들고 포즈를 잡는다.
나는 옆에서 열심히 시중을 들었다.
침대 옆에 놓인 스피커에는
주인장의 취향인 듯한 플레이리스트가 담긴
USB가 꽂혀 있다.
음악을 트니
한 순간에 공간의 분위기가 싹 바뀐다.
내 맘에 쏙 든다.
스마트폰을 켜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알고리즘이란 괴물이 나의 취향을 강요하는 시대다.
남의 취향을 엿보며
나의 고정관념을 깨는 이런 경험이
즐거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