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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Dec 11. 2023

고향

무심천을 걷다

무심하다


무심(無心)다 :

1. 아무런 생각이나 감정 따위가 없다

2. 남의 일에 걱정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다


청주 시가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무심천은

그 이름처럼 참 무심하다.


수도권의 한강이나 관광지인 섬진강에 비하면

고 평범한 지방 하천에 불과하지만,

반찬 몇 개 없이 정갈하게 차려진 시골 밥상처럼

소박한 맛이 있다.


나는 지금 혼자

무심천을 걷고 있다.




일요일 아침,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섰다.

모기가 봄으로 착각할만한 뜻한 날씨다.


평생 처음으로 담가 본 김장 김치를 자랑하겠다고

어제저녁 청주 어머님 댁에 내려와

하룻밤 늘어지게 잔 터였다.


가볍게 동네 한 바퀴 돌고 올 요량이었는데

걷다 보니 어느새 무심천로 들어섰다.


조용하고 깨끗하다.


태어나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곳이지만

늘 지나치던 무심천을 걸어보는 건 평생 처음이다.


천 주변으로 갈대밭이 펼쳐져 있고

그 옆으로 산책길과 하상도로가 나 있는 구조다.

폭우 때 범람을 막기 위해 새로 정비듯싶었다.


걷다 보니

배 모양의 특이한 교회 건물이 눈에 띈다.


그 반대편에는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49제를 올린 절도 보인다.


교회와 절이

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나란히 있는 모습이

일에 무심한 충청도 맑은 고을, 청주를 닮았다.


1시간쯤 걸었을까...

가다 보니 내가 다니던 중학교가 보인다.


까까머리에

검은색 교복을 입고 입학하던  엊그제 같은데...


우울하고 답답했던 그

미소 지으며 바라볼 수 있는 건 세월이 주는 힘이다.




12월의 봄날,


고향

언제나 그랬듯이


삶에 지쳐 돌아온 나를

무심한 표정으로  따뜻하게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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