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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 먹은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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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형
Oct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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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 먹고 싶어
주말 늦잠을 자고 일어난 아들 녀석이
몸보신을 해야겠다며 장어구이를 사달란다.
졸업 전시회 준비한답시고
요새 학교에서 밤샘 작업을 자주 하더니
몸이 약해져 으슬으슬 감기몸살 증상이 있단다
.
군대
첫 휴가 나왔을 때 찾았던
집 근처 장어구이 집에서 주문을 하고 앉아 있는데
녀석이 꽤 심각한 얼굴로 말이 없다.
부 : 졸전 준비는 잘 돼가?
자 : 그럭저럭
부 : 여친은 잘 있고?
자 : 응
말을 붙이려 질문을 던져봐도
부자간의 대화로 이어지지 않는 단답형으로 끝난다.
부 : 네 졸전 작품의 주제는 뭐야?
자 :...(애매한 표정이다)
부 : 특별히 영감을 받은 데 없어?
자 :...(뭔가 생각하는 듯 턱을 괸다)
그리고는 자기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놓기
시작한다.
학교라는 공간과 학생이란 신분을 돌려주고
그동안 쌓인 내 것만을 챙겨
낯선 사회인으로 변신해야 하는 졸업의 의미를 담은
뭔가를 생각한다고
이를 위해 작품에 활용할
건물 리모델링할 때 나오는 여러 재질의 폐자재와
수백 장의 영수증들을 모으는 중이라고
(왜 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꽤 진지하게
요즘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들려주는 아들 모습이
더 이상 미대생이 아닌 작가처럼 느껴진다.
어느새
하얗던 장어가 숯불 위에서
노릇노릇 먹음직스럽게 구워졌고
우린 다시 아무런 말없이 열심히 먹기만 했다.
(배도 고팠고 맛도 좋았다)
잠시 후 다른 볼 일을 잠깐 본다던
아내가 와서 합석을 했다.
멀뚱한 사내 둘 사이에 여인이 끼니 그제야
분위기가 살아나 깔깔거리는 가족 식사자리로 변했다
가성비보다는 가심비가 좋았던 브런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내와 아들은 여느 때처럼
자연스레 손을 잡고 걷는다.
뒷모습만 보면 연인 같아 질투가 나기도 하지만
곧 자기 길을 떠날 품 안에 자식이란 걸 알기에
사진 한 장을 찍어 아내와 아들 각각의 톡에 공유했다.
언젠가 이날이 몹시 그리울 때가
있으리란 걸 잘 알기에.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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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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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작가 연습생입니다. * 문화잡지 <쿨투라> 병오년 1월호에 제 글 '나의 로시난테에게'가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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