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을 포기한 이유
요즘 내 하루의 시작은 청소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침에 눈 뜨자마자 창문을 열고
구겨진 침대 시트와 이불 그리고 베개를 털고
잠자리를 정돈한다.
회사 다닐 때야
좀비처럼 일어나 출근 준비하기 바빴으니
이젠 좀 게으름 부려도 될 텐데...
굳이 청개구리처럼 부지런을 떠는 이유는
주름 하나 없이 깔끔하게 각 잡힌 침구를 보면
5성급 호텔에라도 와 있는 것처럼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서다.
작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어 호텔이 좋다'라고 썼다.
집이란 설거지, 빨래, 청소 같은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띄는 의무의 공간이자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일상의 기억들이
여기저기 들러붙어 있다고.
그의 말대로라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남산자락의 아파트는
호텔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살림을 책임지는 전업주부도 아니고
이사 온 지 일 년 남짓된 이 집에
오래된 상처나 슬픔 같은 게 묻어 있지도 않으니까.
오히려, 매일 아침 침대를 정리하다 보면
여행자 손님이 아닌
호텔 하우스키퍼나 펜션 주인이 된 것 같은
묘한 기분까지 들기도 한다.
정리 정돈은 그나마 쉽다.
일주일에 한 번 집안 구석구석을
털고-쓸고-닦는 대청소는 해보니 만만치가 않다.
편히 살아보겠다고 장만한
공기청정기는 냄새까지 싹 제거해 주지도 않고
스팀 물걸레가 달린 진공청소기는
기능은 많으나, 먼지나 때를 완벽히 없애지는 못해
나름 깔끔쟁이인 나에겐 별 도움이 안 된다.
은퇴한 부부들의 전원주택을 소개하는
<건축탐구 집>이란 TV 프로를 자주 보는데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중년의 삶을 택한
그들을 부러워하며 대리만족을 하곤 한다.
실행할 용기를 못 내는 건
아파트에선 집안 청소로 끝이지만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은 바깥 청소가 더 힘들 거란
현실적 걱정 때문이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
잡초만 뽑고 있다는 직장 선배의 조언이 컸다.
말만 신선놀음이고
몸은 머슴살이라고
전원주택의 꿈을 바로 포기한 이유다.
얼마 전 은퇴를 앞둔
한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들 부부가 평창에 짓던
펜션 겸 전원주택이 드디어 완공되어
정식 오픈 전에 가까운 친구 가족들을 초대한단다.
'산려소요(散慮逍遙)'란 멋진 이름까지 붙이고
<건축탐구 집>에도 소개될 예정이라는데...
카톡으로 보내준 사진들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집
누가 다 청소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