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아무렇지도 않아

by 유월

"제가 왕따를 당했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오히려... 뭐랄까. 꿈이 생긴 것도 같고."

"아무렇지도 않다고요? 항상 힘든 감정을 별 게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우연한 계기였다, 왕따를 당한 사실을 털어둔 것은. 어쩌면 죽음에 가장 가까운 시절은 그때였는데. 돌이켰을 때 그리 아프지 않아서 기억하지 못했다. 선생님의 말씀엔 부정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슬프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슬픈 과거를 안고 살아감이 절망스러웠겠지.

"항상, 본인에게 힘든 일은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시잖아요. 남들이 겪으면 아팠을 거라고 생각하시잖아요."

그 말이 다 맞았다. 나는 그 시절 누가 본대도 아픈 시절을 보냈으니까.
중학교 1학년, 나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과 무리를 만들게 되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을 만나 좋았던 것도 잠시. 친구들은 성적으로 서로를 시기하기 바빴고. 급기야, 성적으로 서로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성적이 제일 높은 친구를 따돌리고, 성적이 다시 낮아진 뒤 어느 정도 대화에 응해주던 것의 반복. 어찌 보면 유치한 놀이 같은 것이었다.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땐 난 더 이상 놀이로 바라볼 수 없었지만.

나는 다시 화해를 하는 것이 어떻냐는 오지랖을 부렸다. 자신과 같은 편에 있는 줄 알았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해봐야 고작 '착한 척'에 그친다는 것을 그땐 몰랐으니까.
다음 왕따는 내가 되었다. 내가 화해하자고 이야기하던 그 친구도 날 따돌리기 시작했다. 원래 내 자리는 없던 것처럼, 그들은 다시 돈독해졌고. 그 뒤로 왕따는 바뀌지 않았다. 고정왕따가 생겼고, 그것은 내가 되었다. '자기도 똑같으면서 착한 척하는 오지랖.' 날 설명하는 말이었다.
그 누구도 나와 밥을 먹어주지 않았다. 며칠을 굶고, 집에 가서 펑펑 울기를 반복했다. 결국 용기 내 홀로 급식실에 앉은 그날엔. 모든 시선이 날 향했고. 난 그대로 자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론 급식실에 가지 않았다. 구토보단 허기짐이 나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급식실에 들어서는 순간, 날 보며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으니까.
카톡방으로 욕을 먹던 그날, 오던 진동에 두려워서. 그 이후 무음이 아니면 쓰지를 않았다. 어디를 갈 때마다 내 행동을 점검하고 나섰고. 혼자 가게에 가, 계산하는 상상을 하면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모두가 날 보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할 것 같았다.
대인기피, 우울증, 극도로 소심한 성격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을 믿지 않았고. 급식을 거르고 집에 와 폭식을 하며 지냈다. 그것이 내 생존방식이었다.

왕따를 당하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체육시간이었다. 반으로 나눠 팀 농구대결을 했던 날, 아무도 날 뽑지 않았고. 난 외로이 공을 던졌다. 작은 내게 너무 높은 골대, 골은 번번히 들어가지 못했고. 모두의 시선이 꽂혔다. 선생님은 친구들의 원망에도 쉽게 날 들어 보내주지 않으셨고,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골을 넣을 수 있었다. 반 친구들은 내 뒤통수에 대고 그런 이야기를 전했다.

"또 관심받고 싶어서 그러지. 진짜 재수 없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온몸이 아파서. 농구가 너무 싫어서. 내 작은 키가 부끄러워서.
이야기를 절반쯤 마치고 나니 심장 한 구석이 아파오는 것만 같았다.

"근데요, 저 정말 아무렇지 않......"

"아픔을 줄이려고 하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것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내 아픔을 인정하는 것, 내 과거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 그것이 내 과제였다. 나는 오래 묵힌 감정을 꺼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