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한 발자국을 내딛으면

by 유월

"근데, 사실 그때가 가장 힘든 건 아니었어요."


상담 중 눈을 곧잘 마주치던 나는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불안한 시선, 그때의 시선과 같이 흔들리는 눈동자. 내가 잊고 있던 나의 상처.


어차피 왕따니까 아무도 나랑 어울리려 하지도 않았고. 반에서 겨우 두 명 들어갈 수 있는 만화부에 들어갔다. 그때의 나는 글을 썩 좋아했으니까.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잘 그린대도 욕할 사람들뿐이니까. 물론 아무도 들어오지 않으리란 내 생각은 보기 좋게 틀렸다. 주동자 친구 역시 만화부에 들어왔으니까.

나는 교실을 떠나서도, 조금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초반엔 반에서만 왕따를 겼었기에 다른 반 친구랑 친해지면 되지 않을까 떠올렸지만... 나는 늘 그 친구를 이길 수가 없었다. 다른 반 친구와 말을 하는 순간엔 '오늘따라 신났네?' 하는 조롱뿐. 그것은 내게 도망칠 곳이 없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방과 후 활동은 조금 더 비참했다. 반 절반이 섞여 진행하는 활동에선 그 누구도 내 옆에 앉질 않았다. 다른 반 친구들과 겨우 어울려 조를 이루었지만. 내겐 소품을 전해주지 않았다. 어떤 활동도 제대로 진행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내가 화해하려 나섰던 친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잘 지내는 것 같다?"


더 이상 내가 알던 친구는 아니었다. 매우 고압적이고, 날 무시하는 말투였으니까. 친구는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옆반 친구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애들은 알아? 그러면 너랑 안 지내줄 텐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에 대한 어떤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는지. 아무리 속았대도 친했던 내게 그럴 수 있는지. 모욕감이 들었다. 뒤이어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친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는 나쁜 사람이라고. 내 실체를 알리겠다고 따지고 들었다. 수많은 말들이 공중에 흩뿌려지고. 친구의 비아냥, 아무것도 그리지 못한 도화지, 겨우 인사라도 건네었던 옆반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모욕을 겪어야 할까 하는 그런 생각.

그날이었다. 삶을 끝낸다면 오늘이 좋겠다는 그런 생각. 그 누구도 나를 좋아할 수 없고, 나도 누군갈 좋아할 자신이 없으니까.


"그래서, 그날 옥상에 가려고 했어요."


말끝을 흐린다. 그래 그때쯤에 고소공포증이 심했다. 학교를 마친 길, 유난히 가벼웠던 그 걸음. 울음조차 나오지 않던 그 걸음은 어땠는지.


"근데, 사람을 만났죠."


죽음 문턱에서 만난 건 만화부 친구였다, 겨우 한 두 마디 덧붙여 겨우 말을 건네던 그 친구. 친구는 내게 밥은 먹었냐는 말을 붙여왔다.


"그 친구가 밥을 같이 먹어주더라고요. 편의점에 가서요. 같이 라면을 먹었거든요."


아마 알고 있었겠지. 그날이 마지막인 줄 알았기에 그런 것인지, 매일 혼자 울던 나를 본 것인지. 어쩌면 동정인지, 알 수 없음에도.


"죽을 수가 없었어요. 마지막에 본 사람이 그 친구니까. 너무 죄책감을 가지진 않을까 했거든요."


이 상담실에서 그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나도 말을 고르고 골라 말을 내뱉는다. 한 발자국 내딛으면 끝을 보았을 내가. 삶의 끝자락에 섰던 그 순간.


"사실 힘들었던 거겠죠. 그때, 그래서 더 사람을 못 믿는 건가 봐요."


울진 않는다. 그저 웃어 보인다. 그 미소는 항상 상담사분을 슬프게 하곤 했다. 오늘은 내 마음도 아프다. 애써 외면한 세월만큼 아프다.


"근데 생각해 보면요. 사실 농구요, 농구도 제게 좋은 기억으로 남기도 했어요."


넷볼 경기에서 키가 작고, 체격이 작은 내게 주어진 역할은 공격수였다. 밀리고 밀려 아프라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주어진 역할이었다. 울컥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날처럼 골 밑에 서, 슛을 던졌다. 모두가 날 비웃기 바빴다. 애써봐야 소용없다고, 나대는 게 재수가 없다고.

공을 던진 순간은 고요했다. 침조차 삼킬 수 없었다.


철썩, 공이 골대로 들어간 순간. 그 누구도 환호성을 지르지 않았지만. 나는 혼자 눈물을 삼켰다.


'해낼 수 있어, 이겨낼 수 있어.'


나 혼자 되뇌던 말은 얼마나 아팠던지. 그 말이 내 마음을 얼마나 울렸는지. 그 아무도 날 기억하지 않는다. 나만이 그 공기를 기억할 뿐이다.


"그 순간들이... 절 살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 시간이, 그 골 하나가."


눈물을 참는다. 그날 골이 들어간 그 순간처럼. 정적, 그러나 가장 소란한 마음. 그리고 늘 그렇듯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