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라면을 좋아해
불우한 가정환경, 왕따 경험. 나는 내가 태생부터 소심하거나 조용한 성격일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사실 성격 검사에선 그런 소견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늘 따라왔던 나에 대한 평가.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 내 주관이 약한 것은 아마 그런 이유이겠지.
나는 내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웠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먹고 싶은 음식을 먹자고 하는 것도 어려웠다. 왕따를 당한 뒤엔 더욱. 내 취향이 타인의 취향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 내가 고른 게 조롱의 이유가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그리고 타인에게 내 취향을 강요하는 것 같단 기분. 이런 복잡한 생각 끝, 내 의견은 작고 작아질 뿐이었다. 내가 내 의견을 말하지 않고, 남들의 의견을 수용한다면. 이런 걱정은 다 의미 없어질 테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 어릴 때로 돌아가곤 한다. 어릴 때 외식 대신 했던 과자파티의 날. 언니들은 척척 원하는 과자를 고르는데도 나는 쉽게 고르질 못했던.
내가 고민 끝에 고른 것은 고래밥이었다. 고른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내 눈에 가장 저렴한 과자, 그다지 맛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눈치 없이 고를 수 있는 것은 그 과자였으니까. 그런 이유가 내겐 가장 중요했다.
초등학생 때 가장 자주 먹던 것은 라면이었다. 집에 널린 것은 라면이었고. 초등학생이던 나는 칼도 잘 다루지 못했으니까. 물만 끓여 넣으면 끝이 나는 라면을 질리게도 먹었다.
처음에는 역겹게도 그것이 싫었다. 매일매일 라면을 먹다 보면. 어른의 걱정을 사기 마련이고. 질려버리기 마련이니까. 어느 날엔 사치스럽게 계란을 얹는대도 결국 계란 라면일 뿐이니까. 그때부터는 최면을 걸었다. 이 가격에 이 맛을 낼 수 있는 건 라면뿐이라고. 나는 라면을 무척 좋아한다고. 엄마의 걱정에도 대답은 쉬웠다.
"저 라면 좋아해요. 맛있잖아요. 그래서 먹는 거예요."
라면을 먹는 이유에 가난을 들었다면, 동정을 받았겠지만. 좋아한단 이유를 붙이면 더는 불쌍하지 않다. 스스로 그 라면이 좋다는 데 누가 하겠어. 그래, 웃기게도 최면이 통했다. 그 역겹던 라면이 어느 순간 맛있게 느껴졌으니까. 나는 정말 라면을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어릴 때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었다. 고작 놀이기구 입장권을 들고 놀이공원을 걷던 날. 언니들과 놀이기구들을 보며 눈을 빛내던 그런 날이 있었다.
그 순간이 특별하게 남았던 것은 타인의 호의였다.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타고 싶을 것 같다며, 답사권을 건네어주신 분이 계셨으니까. 단 두 장, 두 개의 기구를 탈 수 있는 답사권. 감사합니다 말씀을 드리고 고민 끝, 각자 한 번씩 기구를 타면 되겠다던 언니의 말. 그날 내가 손사래 치던 것은 아마 라면과도 같은 이유였다.
"나는 겁이 많아."
엄마는 우리에게 양보해 줄 것이 뻔했고, 내가 포기한다면 언니들은 놀이기구를 두 개씩 탈 수 있겠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라면을 좋아한다 말하던 그 순간처럼.
"나는 놀이기구가 무서워. 나는 안 타고 싶어."
무섭다고 되뇌던 나와, 빛나며 돌아가는 회전목마.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은 역시나 타인의 호의 탓.
성인이 된 지금도 라면을 좋아한다. 일주일에 열 끼를 먹는다면 다섯 끼 이상을 라면으로 때우곤 하니까.
그리고, 여전히 난 겁이 많다. 놀이기구 하나 제대로 못 타는 겁쟁이. 말의 힘을 믿어서, 끝끝내 책임을 지는 어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