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내게 남은 어떤 값진 것

by 유월

"그것도 결국 제 잘못같이 느껴져요."

"그게 왜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요."

상담을 받으며 느낀 가장 큰 점은 나는 외부귀인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떠한 상황에 놓이면 남 탓을 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나는 내 탓을 가장 자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상담이 여기까지 진행되었으면, 내가 탓할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는 결국 부모님도, 왕따를 시켰던 가해자보다야 나를 더 원망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가장 편안한 일이었으니까.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살아가기에 몹시 편리함과 동시에 불편함을 안기는 특성이다. 주변 사람 하나하나를 다 챙기고 들기 바쁘고, 본인을 챙기지 못함이니까.
나는 삶의 의미를 찾고자 기념일을 챙기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런 의지는 종종 꺾이기도 했다. 가끔 돈이 부족해서 이번엔 수량이 많이 없어 많이 챙기질 못했단 내 말에 '내거는 당연히 있지? 없으면 너무 서운했을 것 같아.'라는 친구의 말.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아이의 수량을 따로 챙겨야만 했었고. 가득 찬 두 손으로 기념일을 챙기러 떠나더라도. 나는 빈 손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일이 일수였다. 호의나 선의, 그냥 나누고 싶던 마음이 불편함으로 바뀌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날엔 가끔 그런 친구들을 미워하기도 했으나, 결국은 내 탓으로 끝이 났다.

'그래, 이런 걸 챙긴 내 탓이지.'

누군가는 이런 내 말에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받은 이들은 고마움보단 당연함이 커지는 법이고. 감사함을 기대했던 내가 바보 같던 탓이니까. 당연하게 챙겨두곤, 당연한 것에 서운해하는 나는 한심한 것이 전부니까.

"타인을 미워하는 게 왜 두려우세요? 감정적으로 괴로울 땐 그 사람을 미워할 수도 있는 건데..."

"저는, 남을 미워하는 제가 싫어요. 감정을 타고 저 스스로를 갉아먹는 기분이에요."

그런 사소한 일들만이 아니라 간혹 큰 갈등을 겪을 때도 나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고. 그들을 옹호하기 바쁜 사람이었다.

"왕따 가해자들에 대해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적이 있어요. 신고를 한다면 도와주겠다는 말씀이셨죠. 그런데 저는요..."

왕따를 당하던 그 해 처음 부임하셨던 선생님, 선생님은 나를 부단히 도와주려 애쓰셨지만. 나는 선생님의 기대를 보기 좋게 무너트리는 사람이었다.

"신고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래도 친구였는데 어떻게 그러느냐고요."

학교 행사로 마니또를 진행하며 가해자 친구가, 내 마니또로 지목당했던 것. 그래서 쪽지에 내가 농구하는 그림을 그리며 '너에게 힘들어 보이는 농구시간.'이라고 조롱했던 것조차 나에겐 큰 상처로 남았지만. 이내 원망을 멈췄다. 그래 내가 농구를 곧잘 했다면 네가 날 조롱했겠느냐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대학생이 된 지금도 갈등 상황에 놓인 적은 잦았지만. 나는 그들이 날 비방하며 헛소문을 내는 그 순간에도. 결국 그들을 비방하지 못했다.

"착한 척이겠죠. 결국 저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눈치 보고. 척하는 그런 못난 사람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불운을 사고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늘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그들이 아닌 나를 탓하고 나선다. 남을 원망까지 하게 된다면 내게 남은 것은 어떤 값진 것도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