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가치가 없는 사람
그때부턴 삶의 의지,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바빴다.
전공책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삶의 의지를 나타내주진 않는다. 삶이 소중하며,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을 뿐이고. 결국 답을 얻지 못한 내게 모멸감을 안길 뿐이었다. 상담에서도 그러했다. 생명존중 서명을 하더라도, 그 서명은 솔직하지 못했다. 그래, 어차피 나는 죽을 용기도 없었지만. 사실은 살 용기도 없었으니. 죽고 싶단 충동을 고백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저 부채감, 거짓말로 삶을 살아가고 있단 죄책감이 날 따를 뿐이었다.
너무 힘들어 당장이라도 깊은 잠에 빠지고 싶었을 땐. 겨우 찾은 답으로, 상담사분께 그런 이야기를 전했다.
"선생님, 저는요. 사실 죽을 수가 없었거든요. 삶의 의지가 강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죽는 거에도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책임이요?"
"제가, 빚이 많아요.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엄마가 절 키우시는데 돈이 많이 들었잖아요. 근데 제가 그 빚조차 못 갚고 가면... 너무 손해일 것 같아요. 적어도 그 빚이라도 갚고... 아니 어쩌면 보람이라도..."
겨우 내놓은 답, 누군가는 돈이 없어 죽고 싶다는데. 나 역시 돈이 없어 무척 힘들었지만. 괴이하게 다른 이유를 찾았다. 내 존재를 투자로 본다면. 이건 치명적인 실패일 테니. 너는 죽을 자격도 없다고 나를 비난하고 들기 시작했다. 근데 우습게도 이 이유는 나를 지켜주기 시작했다. 어떤 모멸감을 겪어도, 어떤 수치심이 드는 순간에도. '죽을 자격도 없는 나'라는 타이틀이 적어도 날 죽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다. 자취를 시작하곤 돈이 모이는 날이 없었고, 빚만 늘어갔다. 아무리 일을 한대도 채워지는 날이 없었다. 우습게도 그런 이유로 삶을 버텨낼 수 있었다. 돈을 쓰며 빚을 늘리는 것이 나를 위한 방도가 되어주었다. 적어도 이 돈을 다 갚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 따위가.
'돈을 다 갚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죽어도 되는 걸까'
통장을 들여다보고, 비어있는 잔고를 보면서 한숨 쉬기를 여러 번. 더 살기 위해선 빚을 내야 하는 생각만 수십 번. 살아만 있으면 된다는 나의 합리화는 더 큰 지출을 만들었고. 결국 삶을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냈지만, 남는 것은 없었다. 쓰레기 같은 삶, 기생충 같은 존재. 사실 지금 돈을 다 갚는다고 해도, 앞으로 지원받아야 하는 것이 더 남았다면? 결국 삶의 지속은 더 큰 민폐가 될 것이라는 생각. 매일매일 그런 괴리감에 빠져 괴로워했다.
"항상 눈치를 많이 보시죠, 어머니 눈치를요. 결국은 항상 그런 쪽으로 귀결돼요. 존재 자체를 증명하고 싶으신 거잖아요. 살아도 되는 이유를 찾고 계신 거잖아요. 저는 죽고 싶단 말보다, 그 말이 더 아프게 들려요."
나는 적어도 죽고 싶지 않다, 아니 죽을 자격도 없으니까. 내 삶이 안타깝고, 불우할지라도. 내겐 죽어도 되는 이유가 없다. 그것이 전공책에 서술한 아름다운 이유가 아닐 뿐이고. 추한 부채감일 뿐이지만.
"선생님, 저는 죽고 싶은 게 아니에요. 정말 죽을 용기도 없어요. 그건 약속드릴 수 있어요."
상담사분의 표정이 어땠는지.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아마 늘 그렇듯 웃는 얼굴로, 남 이야기하듯 넘겼는지.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듯, 내 감정조차 속이고 살아가고 있는지.
삶과 죽음 사이, 책임을 어디에 물어야 할지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