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더러 있었다. 내겐 너무 당연한 생각이라,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우스운 생각일 뿐이었지만.
삶보단 늘 죽음에 가깝다고 여겼다. 사는 이유를 찾는 것보다야 죽음의 이유에 대답이 늘 쉬웠으니까. 하루하루가 버겁고, 내일을 기대할 수 없으니. 남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유서를 적어보기도 하고. 중학교 때는 정말 뛰어내릴 심산으로 옥상으로 향하던 날이 더러 있었으니까. 어린 날 지탱해 주던 것은 없었다. 삶의 이유를 찾는다면, 단 하나. 내 장례식에는 손님도 없으리란 비참함 때문이었다. 하나를 더해봤자, 죽을 용기조차 없는 한심한 나의 몫이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선생님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네가 졸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잘 생각이 되지 않았어.' 그럴만했다. 나는 매일 급식을 걸렀고, 점심시간에 엎드려 자기를 반복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선생님들은 내 불우한 가정환경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셨다. 학교가 작은 편이라 가해자들과 분리가 된대도 고작 옆반이었다. 마주치는 날에는 온몸이 굳어버렸고, 심장이 세차게 빨리 뛰곤 했다. 그런 날엔 교무실에 가서 눈물을 흘렸으니 졸업이 생소한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한 생각은, 중학교 시절이 아깝다는 생각뿐이었다. 고등학교에 가니 더 이상 가해자들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었고. 나도 조금은 밝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굳이 죽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 하는 생각과, 내일이 두렵다는 생각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다지 힘들지 않은데 죽음을 택한다면, 중학교 때의 고통이 가볍게 보일 것도 같았다. 결국은 애인들의 몫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할 뿐이었다. '그래 애인이 갑자기 죽는다면 너무 슬프겠지.'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가끔씩 내 고통을 이야기하며 상처 주는 일이 잦았지만.
심리학 서적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고, 시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유일한 도피방식이 되었다. 책에선 어느 누구도 삶의 의지나 목적성을 피력하지 않는다. 성장하는 자신에 의문을 표하지도 않고, 삶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이 죽음에 대한 생각을 줄여주곤 했다. 그런 생각에 사실 공부를 하지 않고, 책만 읽었던 것 같다.
성적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은 그런 이유였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미래를 계획하기는... 무슨.' 딱 스스로 창피하지 않을 성적만을 받으며, 대충대충 시간을 때웠다. 선생님들은 왜 노력하지 않느냐고 의문을 표하셨지만 애써 웃어 보일 뿐이었다. '꿈이 크지 않은 나, 간절하지 않은 나' 그것이 내 단어였다. 노력한 뒤 얻을 결말이 고작 죽음이라면,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내가 가장 자주 하던 말은 '살아있으면 된 거지. 뭘 더 노력해야 해.'따위였음으로 삶은 보잘것없기도 했다.
친한 친구들이 생겨도, 그들이 나의 죽음에 슬퍼하리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장례식을 떠올려보아도 여전히 누가 와줄지 생각이 들지 않아서.
그때부터 삶의 의지를 찾고자.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다짐에 사람들은 내게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건 사실 내 삶의 연장을 위한 길이기도 했다. 내 가치를 스스로 생각할 수 없으니, 결국 타인의 시선에 의지하겠다는 말이었다. 내가 필요한 사람이 생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을 살아갈 힘이 아니겠냐는 바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었다, 난 삶을 살아갈수록 힘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삶은 중학교 때의 내가 겪던 고통보다, 더 큰 아픔이 많았다. 중학생 때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세상은 너무 넓어서, 희망만을 내게 안겨주지 않는다'라고. 고통을 이겨낸다고 해서 행복만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 고통 뒤엔 더 큰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어릴 적 네가 버텨온 오늘은 더 고달픈 내일을 모른 체 내뱉은 말이었다고. 중학교 때 삶을 포기하지 않은 나를 책망하려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가끔 그날처럼 어딘가로 향하고 싶어졌다.
난 새 의지를 찾아야만 했다. 내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 명백해지기 전에. 죽음이 더 가까워지기 전에. 제대로 살아갈 용기도, 죽을 용기도 없는 내가 움직일 곳이 어디 일진 뻔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