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나 역시 사랑하지 않겠어

by 유월

가정 내 결핍은 여러 부분에서 나를 괴롭히곤 했다. 부모님께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아파했다.


문제없는 딸이란 것은 아주 매력적이지만, 한 편으로는 가장 무관심의 영역에 들어가기 좋은 단어가 되었다. 학교에서의 문제뿐만 아니라 질병에 대해서도 그랬다.

형제자매는 큰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고, 깁스를 하는 일들이 더러 있었지만. 나는 어릴 적 독감에 걸린 것 말고는 큰 병에 걸려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 언니가 폐렴에 걸려 입원한 적이 있었다. 언니가 어렸기에 엄마가 챙기러 매일 병원에 가셨다. 어린 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쓸쓸히 엄마를 기다렸다. 집에서 홀로 남아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어찌나 괴로웠는지. 어린아이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떠올리기도 했지만. 언니의 고통보단, 나의 외로움이 오랜 기억으로 남았던 것 같다.


그때쯤엔 '관심'을 받고 싶단 명목하에 작은 상처에 밴드를 붙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도 차라리 아파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독감에 걸려 수학여행을 망치고 집에 왔을 땐 아픈 몸과 달리, 기쁘기도 했다. 그땐 엄마가 날 손잡아 병원에 가주셨기 때문이었다. 아프니 과일을 먹자며 과일을 챙겨주셨고, 약을 잘못 먹는 나를 위해 사탕을 사주셨으니까. 여전히 혼자 병원을 잘 가지 못하는 건, 아픈 사실을 숨기지 못하는 건 어쩌면 일종의 애정결핍은 아닐지 지금 와선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의 나에게 아픔이란 그저 몸의 아픔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어릴 땐 충동 조절을 잘하지 못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를 뜯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피를 무서워했기에 거기서 멈췄다. 더 큰 사고를 내진 않았다.

극도로 불안해오는 날이면, 손톱 옆의 거스러미를 뜯었다. 뜯을 거스러미가 없으면 머리를 미친 듯이 넘기며 뜯었다. 답답함에 책상을 엎는 일도 더러 있었다.

웃긴 건 부모님 앞에선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난 철저히 혼자 있을 때만 문제상황을 보여주는 아이가 되었다. 그러한 괴리감이 어느 순간 좌절로 바꾸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실망하는 일이 늘어나고, 엄마의 그 어색한 안아주심에 '아 나는 평생이 지나도 내가 만족할 사랑을 받을 수 없구나'라는 절망 끝에. 나는 결국, 부모님의 사랑을 포기해 버린 것 같다. 어릴 때 밤새도록 해냈던 학습지도. 늘 교과우수상을 턱턱 안겨드리던 나도, 어느 순간 즐겁지 못했다. 부모님께 사랑을 받는 것, 그것을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비참한지... 그런 사실이 더 이상 달갑지 않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땐 방문을 닫았다. 최소한의 대화만 진행했다. 중학교 이후론 더 이상 대화를 할 자신이 없었다. 아마 왕따를 당한 후 부모님 반응이 큰 상처가 되었으리란 생각만 할 뿐이었다.

왕따를 당하며, 헛소문이 전교에 퍼졌고. 급식을 거르는 일이 많아. 집에서 라면을 두 봉지를 끓여 먹고, 간식을 꾸역꾸역 욱여넣는 날 보고도. 그 누구도 나를 위로해주지 않았다.

더 이상 밴드 따윈 붙이지 않았다. 소리 내어 울지도 않았다.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날엔 집 옥상에 올라가 펑펑 울었다. 나의 고통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부모님보단, 나의 고통을 몰라 외면하는 부모님이 더 나을 테니까. 그때부터 고소공포증이 생겼다. 발 밑을 내려보면 삶의 끝자락이 보이니까. 어디까지 추락할지 감도 오지 않으니까.

무결점한 딸의 타이틀을 포기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문제가 생긴 대도, 날 사랑해주지 않고, 문제가 없어도 날 사랑해주지 않는구나. 아니 오히려 문제가 생긴 딸은 더 철저히 외면받는구나. 그 상처가 더욱 크게 남았던 것 같다.


그때를 생각하며 거스러미를 뜯는다. 부모님이 날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나 역시 사랑하지 않겠단 다짐이었다. 더 이상 사랑받으려 애쓰지 말아야겠다.

고등학교 이후 방문을 닫았다. 그것은 일종의 회피였다. 그리고 아무도, 내 방문을 열어주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