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스러운 아이
"선생님은 네가 어른스러운 게 참 슬퍼. 그러지 않아도 되는 나이인데,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것 같아서."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한 상담에서 담임선생님이 내게 건네셨던 그 말. 내가 불쌍하다는 그 말엔 한 번도 동한 적이 없는데. 그 다정한 말에 가슴이 아파왔던 건, 아마도 내가 어려서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그런 어른스러운 척 그런 말을 했던지.
"어른스러우면 좋은 거죠, 세상을 빨리 알았으니까."
나는 넉넉지 못한 집에서 자랐기에 현실을 빨리 깨달아야 했다. 용돈은 교통비 명목하에 달에 4만 원을 겨우 받았고. 도보로 30분쯤 걸리는 학교에 걸어가며 용돈을 아꼈다.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가는 날엔 한 달을 내내 걸어 다녀야 했지만. '나는 걷는 걸 좋아하니까'라는 이유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난의 무게란 발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니까. 남들 하는 대로 다 할 순 없는 법이니까.
고등학교 내내 제대로 학원 한번, 문제집 한 권 제대로 풀어보지 못했고. 나는 철저히 독학으로 공부를 이어갔다. 학교가 좋은 곳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난 공부를 적당히 하는 학생이었고, 선생님들의 애정도 받을 수 있었다.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받아 100만 원의 장학금을 받은 적도 있으니까.
그 돈으로는 엄마께 딱 20만 원만 받아 무선 이어폰을 구매했다. 그리고 그 무선이어폰의 케이스를 구매했다.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값진 것이었고, 나는 그것을 3년을 썼다. 너무나도 귀중한 것이었다. 남은 돈은 엄마께 전부 드렸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드디어 일 인분을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즉, 이유였으니까.
규정될 수 있던 가난함에 특수전형으로 인서울과, 인경기에도 대학교를 붙었으나 결국 진학하진 않았다. 엄마가 '서울에 붙었으니, 보내긴 해야겠지.' 하며 걱정하시는 표정을 봤으니까. 그래, 사실 나도 서울살이는 자신이 없었다는 그 말과. 그 대학교는 심리학이래도 특수했으니 내 적성이 아니라는 이유. 물론 정말 지금 진학한 대학교가 좋은 선택이었다는 데엔 반하는 바가 없지만. 현재까지도 남들이 부모님 때문은 아니냐 묻는 그 말에 쉽게 대답할 수가 없으니까.
서울에 갔다면, 더더욱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까. 난 잘할 자신도, 책임질 자신도 없는 어른스러운 척하는 아이일 뿐이니까.
내가 어른스러운 척 군 날은 언제일까. 어른이 된 지금도,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은데. 내가 멈춘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아마도 첫 알바 탓일지. 오랜 두려움의 기억을 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