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는 이가 없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집이라고 보기 힘든 작은방에서 가족들 다 모여 잠에 들 때. 나는 벌레가 두렵다며, 추위가 두렵다며 이불속에서 한참을 울었던 날이 있었다. 10살 남짓의 어린 나이. 어린 나는 주린 배와 추위가 두려웠다. 인생의 한 기억에서, 나의 어린 순간이 그리 남음이 서럽고, 비참해진 순간이 있었다. 내게 기억은 그렇게 남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다만 내가 누운 아랫목보다 윗목이 더 시리게도 추웠으며. 기억에도 잘 남지 않을 내 어린 시절보다야. 부모님의 기억이. 어린 자녀에게 아랫목 겨우 내어주던 마음이. 수험생 딸에게 방 한 칸 마련해 주지 못한 마음이. 그 시린 마음이 겨울보다 시리리라고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나는 다시금 그날을 떠올린다. 배고픈 겨울, 추운 그날. 그 누구보다 시리던 어머니의 마음을. 평생 한으로 남아 계속 시려올 그 슬픈 마음이.
현대시를 교양과목으로 선택하고 나서는 매주 내 생각을 적어 제출해야만 했다. 위에 적힌 글이 바로 지난주 과제 '성찰'의 내용이다. 내용은 간결하다. 어릴 적 내가 놓친 엄마의 마음이었다. 단순히 나의 불편만을 생각하여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성찰. 그쯤의 이야기. 적을 때도 조금 슬픈 감정이 들긴 했지만 수십 차례 읽고 읽으며 나는 처음보다 가슴이 더 아파왔던 것 같다.
가난이란 무엇일까?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엄마의 마음을 고스란히 이해하는 것을 넘었다.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나가 내 용돈벌이, 생활비를 하는 와중에 가끔 그런 가난이라는 생각이 나를 잠식하곤 한다. (과제로 제출한 글을 내고 난 뒤에는 더더욱 그런 생각이 나를 괴롭게 한다.)
난생처음 명절 선물을 받고 가게 매니저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독 악독한 곳에서 일을 했던 날 보고 매니저님이 안타까워하시며 말을 건네주셨다. "그거 받고 그렇게 기쁘면 어떻게 해. 너무 안 좋은 곳에서만 일했어. 사실 너 나이면 용돈을 받는 게 당연한 건데..." 걱정 어리고 따스한 말투에 나는 바로 웃어 보이며. "강하게 자란 거죠." 하고 헤실헤실 웃어 보였다. 괜찮았다.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그 걱정이 따스했으니까. 나는 이제 어른이니까. 손님이 들어오시곤 다시 밝게 주문을 받는다. 어린 아이다. 부모님의 주문을 대신해 주는 모습. 뒤돌아서서 칭찬을 받는 모습. 또다시 주문을 받는다. 엄마가 그 정도도 못 사주겠냐는 말과 따뜻한 분위기. 주문을 받는데... 무언가 너무 답답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플 일은 없는데... 내 적성에 너무 맞는다고 생각한 일이 아닌가. 아무리 바빠도 즐거워하던 일이 아닌가. 보람차게 벌어 사용하는 돈이 값진 것이라며 기뻐하던 매일이 아닌가.
모자를 벗고 나간 휴게실에는 답이 없다. 대답할 수 없는 이유에 가슴이 아프다. 나는 대답은 몰라도 답을 알았다.
나는 가난을 알고 싶지 않았다. 오늘을 벌지 않으면 내일 뭘 먹어야 할지. 이것을 구매하면 내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그런 사실들을 알고 싶지 않았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출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힘들어서 나온 직장을 돈이 없단 이유로 돌아감을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금 주변인의 말이 떠오른다. '일 안 하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는 거야?', '부모님이 조금도 도와주지 못하시는 거야?'
가난한 어른은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만 먹으면 일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가난이라니... 그건 그저 게으른 사람의 핑계 아닌가. 간절하지 못한 자의 거짓 아닌가. 내 손은 이런 말을 쉽게 적어낼 수가 없다. 가난한 마음만이 남아 형편없는 말들만 적어내고 있음이 분명해서.
내일은 월급날이다. 분명한 설렘과 기대감이 가득하다. 계산기를 두드려도 풍족하리란 생각도, 내 아끼는 사람에게 원하는 만큼 보답해 줄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들지는 않는다. 또 가슴이 답답해져오기도 한다. 엄마의 마음이 다시금 이해가 된다. 가난한 어른이란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이라는 걸. 이제야 과제를 제대로 제출한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저번 과제는 솔직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