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좋지 않은 선택

by 유월

열아홉 살, 수능을 마친 내가 가장 먼저 부모님께 전한 것은 알바를 구하겠단 이야기였다. 대학 합격도, 나의 미래 목표도 아닌. 다짐, 어쩌면 이제 안심하라는 이야기.

대학교 면접은 쉬웠는데. 왜 알바 면접을 잘 보지 못했는지. 나는 번번이 알바 서류 탈락을 겪었다. 부모님껜 당차게 알바를 구하겠다 말하곤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고. 조급함이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돈을 벌고 싶어도 벌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속상한 일인지 나는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짧다면 그 짧은 알바 구직기간은 내게 비참한 시간으로 기억에 남았다.

스스로 알바를 구했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결국 당시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사람이 많이 나가 힘들다고 했던 남자 친구 말처럼. 인력난으로 웨딩홀 부장님은 일할 사람을 물어보셨고. 그 과정 속, 부장님께선 남자 친구 프로필 속 내 사진을 보시곤 채용제안을 주셨다. 생각했던 알바 자리는 아니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일을 해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일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찌 보면 나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은 갈망이었다.

일은 단순했지만, 인수인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자친구에게 겨우 물어 조금의 정보를 얻었을 뿐이고. 매번 나는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달고 살며 응대를 해나갔다. 다리는 아팠고, 화장실도 뛰어가기 바빴다. 그럼에도 견뎠던 것은 모두가 이렇게 살아가겠지 하는 한탄이었고. 이것마저 이겨내지 못한다면 '나는 무척 나약하다'라는 비난이었다.

겨울의 추운 날씨, 알바생인 내게 닿지 않았던 난로. 외투 없이 쓸쓸히 걸친, 얇디얇고 사이즈 맞지 않는 흰색 셔츠. 그 서늘한 감촉이 내게 닿을 때마다 돋던 소름. 난로 앞에서 패딩을 입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을 보며 그들은 따뜻할까 떠올렸던 순간들. 그럼에도 퇴근 후 현찰로 쥐었던 그 소중한 가치. 그리고 맛있는 걸 사서 집에 들어가던 나의 기억은, 두려움 속에도 소중하게 자리했다.
결혼식 큐알체크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남들의 축복 속 함께 할 수 있단 것에 의미가 있었고. 나는 반짝이는 사람들을 보는 게 좋았다. 때론 폭언과 여러 부당함이 날 막았지만. 그럼에도 '돈 벌기는 힘들다.', '부모님도 다 해오신 일이다.' 하며 버텨냈다.

그때부터는 모든 것들을 시급으로 헤아리곤 했다. 이 음식은 두 시간을 일해야 먹을 수 있고, 저걸 하려면 하루를 바쳐야 하는구나. 당시 내가 벌던 일당은 하루 3만 원에서 4만원남짓. 이틀을 다 출근해도 7만 원 이상을 벌기가 어려웠다. 내 노동의 대가가 딱딱 금액으로 나오는 것은 쉬이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불규칙한 근무, 적은 근무 시간. 결국 다른 일을 하는 게 나을까 생각하던 그때. 내 고민이 우습게도, 큐알체크 의무화가 폐지되며 일은 끝마치게 되었다. 다시 알바를 구해야 한다는 불안감, 결국 실직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기 바빴다. 그런 기간도 잠시, 부장님께 곧 다시 연락이 왔지만.

부장님은 웨딩홀 뷔페 바리스타자리를 제안하셨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때는 그 선택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라 떠올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