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도망치는 이와, 머무르는 이

by 유월

"의리 없네."

퇴근을 앞둔 내게 던져진 말. 모두가 날 바라보던 그날. 내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도망친 날.

폭언, 높은 업무 강도, 출근하기 전날이면 빠르게 뛰던 심장. 나는 일에 대해 누구보다 높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나친 폭언에 시달리다 보니 누가 날 부르면 깜짝 놀라는 일이 잦았고. 출근 전날이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죽을 것 같단 생각을 종종 했다.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죽음에 가까웠던 내가 죽음이 두려웠다니.

그곳에는 '사람을 굴린다.'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말이었는데. 당시 나는 순종적으로 네네 대답하는 사람이었기에 그 대상이 되지 못했다.
'업무 배제, 폭언, 무시, 업무 추가 및 변경' 여기까지 사람을 굴리고 나면 그 사람이 택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였다. 수긍하거나, 퇴사하거나. 뷔페 근무 특성상 나처럼 어린 학생들이 많았고, 그들은 울며 죄송하다고 빌고 다시 근무를 시작하기 바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수없이 보며 '찍히지 말아야겠다.'라는 비겁한 생각들을 하곤 했다.

일요일 오후, 퇴근을 준비하던 내게 들어왔던 연장 요청. 남자친구와의 약속 탓에 거절을 하니 의리가 없다고 매도하던 직원들. 직원들뿐만 아니라 같은 알바생들도 나를 비난하고 들었다. 울먹이던 나를 보며 그들은 "안 갈 거지?"라며 되물었다. 무슨 용기였는지 항상 '네'하고 대답하던 나는 처음으로 '아니요'라고 답했다. 당황하던 직원들, 사실 나조차도 믿기지 않았던 일. 그런 나를 보며 차갑게 굳었던 부장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감당할 수 있냐는 그 말에도 나는 작은 목소리로 퇴근하겠다고 말했으니까.
퇴근하기 전 들렀던 세척실에서 물기 서린 바닥을 밟고 넘어져, 음식물에 옷을 버렸고. 건물 밖으로 나서는 모든 길에 따라오던 시선들. 그리고 그 비웃음. 나는 그 모든 걸 뒤로 한채 걸음을 옮겼고 그것은 내 마지막 출근이었다. 흔히 말하던 '굴림'의 대상이 바로 내가 되었으니까.

2주간의 업무 배제, 그리고 무시. 그에 대해 항의하니 돌아왔던 업무 변경. 바리스타로 입사했던 나는 종종 뷔페 홀 서빙을 돕기도 했지만. 그것은 분명 보조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다시 일을 한다면 뷔페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부장님의 말에 나는 크게 자책했다.
남자친구는 죄송하다고 말씀을 전하곤 평소와 같이 근무를 이어갔지만. 부장님은 둘 중에 한 명이 그만둬야 근무태만을 멈추지 않겠냐는 말씀을 이어가셨다.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나는 오래 고민했지만, 그 부당함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또한 내가 선택받지 못했단 사실도 견뎌내기가 어려웠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내가 어린 탓인지. 이곳이 너무 부당했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나는 그곳을 떠났고, 며칠이 지나도 잠을 자지 못했다. 이겨내지 못한 나,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사람들. 이겨내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웠고, 버티고 남은 사람들이 두려웠다.

그래, 그게 내 우울증이었다. 오랜 우울증을 앓았음에도. 쓸모없는, 이겨내지 못한 내가 너무 싫어서. 성인이 되고 겪었던 절망. 오래 이겨내지 못한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