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은 없잖아
그녀는 홀로, 그러나 크게 공간에 자리 잡고 섰다. 오늘은 반드시 청소를 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미뤄온 것이 며칠인지 감히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미뤄온 청소를 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가 참으로 게으르다고 생각하며 먼지떨이를 들었다.
"생각해 보니 여름 되고 환기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네."
계절감이 바뀌고, 옷장의 옷들은 더위를 못 이겨 바꿔내었음에도. 그녀의 방은 여전히 어수선했다.
그녀는 원래부터 정리에는 소질이 없었다. 뭐든지 미루고, 추억이라 여기기 바빴다. 남들이 보기엔 쓰레기일지라도 그녀의 눈으로 보면 달리 보였다.
"이 봐, 아직 이렇게 빛나는 것을."
먼지 속에서 얻은 것은 거울이 달린 귀여운 키링이었다. 펜던트를 열면 안에 거울이 반짝 빛을 보이는 키링. 그녀는 먼지를 후후 불고 거울을 통해 머리를 손으로 슥슥 빗었다. 먼지 구덩인데 머리를 빗어도 되나? 혼자 떠올리곤 킄킄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먼지 속 단장이라니 이보다 우스울 순 없었는데 왜인지 익숙한 모습이기도 했다.
아 진짜 정리해야지. 그녀는 먼지를 툴툴 털었다.
먼지가 쌓이지 않게 위에서 아래로 먼지를 쓰윽 털어냈다. 툭, 툭. 그다지 성의 있는 청소는 아니었다. 대충 훑는 먼지떨이에 먼지가 완전히 사라질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청소하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티브이 위, 선반, 그리고 책상, 액자 위까지. 그녀는 액자에서 잠시 망설였으나 탁, 탁 세게 털어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정리하는 건 힘든 일이지?"
누구도 듣지 못할 말인데도 그녀는 계속 중얼거렸다. 그래야만 이 고요한 정적이 멈출 것만 같았다. 정리는 너무나도 고요하니까 소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이 넘치는 말들도 정리할 순 없어 보였다.
그녀는 어느새 거울 펜던트를 목에 걸었다. 창문에 들인 그 빛이 거울에 반사되는 듯 보였다. 반짝, 빛 나는 거울을 목에 거니 무언가 해결되는 기분도 들었다.
"역시 먼지 속에서도 빛나는 게 있잖아."
그녀는 쓴웃음을 지어내곤, 액자 앞으로 섰다. 아 그래, 이제 정말 정리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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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가진 지 2주. 그녀는 애인과 어떤 연락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연락을 보내보고 싶었지만. 도통 연락 없는 그에게 먼저 연락을 보내기 두려웠다.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 물어보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이러면 그가 더 지쳐 떠날까. 그는 어떤 생각일까. 나날이 빛을 잃어가는 관계에서, 빛이라곤 그녀의 총명한 눈이었다. 사랑을 가득 담은 눈. 그의 눈에선 어떤 반짝임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의 과거의 눈동자에 머물렀다. 그가 바쁘다는 이유로 그녀를 보지 않은 것도 수십일. 시간을 가진 것을 더하면 한 달은 되었을까. 그럼에도 그에게 시간을 내어달라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바보 같다 여겼다. 이미 끝난 관계
붙들고 있는다고 달라지나. 마음만 아파지지. 그녀는 그 모든 걸 알고도 이 아픔을 감당하고 싶었다. 그가 없으면 더 괴로울 것 같았다. 그가 준 펜던트는 아직 반짝이니까, 어쩌면 우리도 다시 반짝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
어두운 방 안에 그녀는 침대에 기대어 눕고. 연락 한 통 오지 않아 고요한 이 방에 우두커니 섰다. 홀로 남아 더 크게 느껴지는 이 공간의 고요. 그녀는 이 상실감을 극복할 자신이 없었다.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닌 괴리. 그녀 방엔 그녀 마음처럼 먼지가 가득 내려앉았으나. 그녀는 펜던트만은 항상 깨끗하게 닦아 모셨다. 그가 준 선물이었잖아, 아직 빛나잖아. 이런 말을 할 기회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기대감이 먼지로 내려앉은 방 안에. 오랜만에 온 그 빛은. 그저 빛날 뿐, 빛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 속에서도 빛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그가 좋아하던 옷, 신발, 그리고 귀여운 귀걸이, 그가 준 펜던트. 빛나는 모든 것을 담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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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선 방인데도 고요히 넓은. 무수히 많은 말대신 침묵이 내려앉는 이 방에서. 고요를 깬 건 차가운 눈빛이었는지.
그녀는 그런 그의 눈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차가운 빛을 안겨준 것은 그의 마지막 선물인가. 마지막이라도 말해준 것이 예의였으려나. 그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말을 들었다.
그가 건넨 사진, 그 사진 속 그녀는 제각각 웃고 있었지만. 그 사이엔 그 많은 웃음이 있었지만. 고요 속엔 어떤 웃음도, 앞으로 어떤 기쁨도 남아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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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 앞에 선 그녀는 먼지를 탁탁 털어내다 신경질적으로 팍, 팍 내려쳤다. 그리 툭 쓰러진 액자가 무심히 도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어쩌면 깨지길 바랐으나 아쉽게도 그 액자는 깨지지 않았다. 유리하나 흠집 없이 반짝이니. 청소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닌데. 마저 정리해야 하는데. 먼지 털어낸 것으로 만족할까.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건 아직일까."
무심코 목에 건 펜던트를 다시 창문에 반짝 비춘다. 어두운 이 공간. 이 넓은 공간 속 고요. 빛나는 무언가. 빛을 잃은 무언가. 아 이건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구나.
그녀는 펜던트를 목에서 걷어낸다. 창문을 친다. 더는 빛나지 않아. 더 이상 빛낼 것도 없어. 빛은 꺼졌으니까. 펜던트를 힘없이 바닥에 던져내 버렸다. 조금의 흠집, 아 이건 이제 버릴 수 있으려나.
빛 꺼진 저녁, 청소는 끝나지 않고. 빛날 수 있는 것들은 사라지고. 어떠한 가능성도 없이. 고요한 그 공기 속. 그 넓은 공간 속 작아진 그녀. 그리고 빛날 리 없는 창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