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트였어

왜 그 꽃을 보여주고 싶었어?

by 유월

아가야, 봄꽃이 트였어.

엄마는 내게 늘 꽃이 피었다고 연락을 주시곤 했었다.


봄의 단장, 꽃의 개화. 그것이 내게 봄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엄마와는 가끔 전화를 했다. 내가 거는 일은 없었다. 받지 못해 부재중이 찍히는 일이 많았다. 부재중을 보고도 전화를 거는 일은 잘 없었다. 중요하면 연락했겠지 하는 마음. 사실 생각해 보면 그다지 중요한 연락도 아니었거든.

엄마는 꽃이 피었다고, 보던 고양이가 아기를 가진 것 같다고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해주시곤 했다. 내가 아직도 아이인 줄 아시나 그저 웃어넘겼지만. 나는 너무 바빠서 그런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못했다. 당장 내 하루가 바쁜데 그런 이야기들을 다 들었다간 시간이 부족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꽃이 피었어. 옆집 할머니 집에 예쁜 꽃이 피었어."


"전에 얘기한 그 분홍꽃? 전에도 필 것 같다며"


"그래, 그 꽃! 네가 좋아하는 분홍색 꽃이야. 너 닮은 듯 아주 곱고 예뻐."


"칭찬은... 나 바빠, 엄마."


"얘는 참, 너네 회사는 시간도 없대? 왜 자꾸 바쁘대. 겨울 가면 봄도 오고. 가을, 겨울도 오듯이... 한가한 날도 있어야지."


"엄마는 참... 회사생활이 다 그렇지. 어떻게 그런 걸 정해둬."

"그래도 기억해 둬. 영원한 건 없잖아. 저 꽃이 매년 핀대도.. 올해 꽃은 올해가 마지막이야."


"나 바쁘다니까두. 알겠어. 나중에 또 연락해요. 일 생기면 연락할게."


애교 많은 딸은 되지 못했다. 요즘은 딸을 낳아야 좋은 거라며, 딸이 잘 챙겨준다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나는 굳이 따지면 아들 같은 딸이었다. 몸은 어떤지, 별일은 없는지. 일 있으면 말 많은 엄마니까 연락하겠지 싶어서 미루고 미뤘다. 솔직하게 귀찮잖아. 이런저런 연락을 받고, 하는 일.

엄마와 같이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 어른이 되고 독립했고. 자취하고 얼마간은 자주 연락을 했지만 이제 그마저도 자주 하지 않았다. 할 이야기가 있나 싶었다. 하루 사는 게 다 똑같지. 대충 밥을 챙기고, 대충 잠에 들고. 회사에 다니고 그런 삶의 반복 아니겠는가. 엄마도 그렇듯 다들 그렇게 사는 거니까.

바쁘다는 데도 엄마는 결국 꽃 사진을 보낸다. 분홍꽃이 활짝 핀 화단.


참, 예쁘기는 진짜 예쁘네.


여름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꽃은 다 지고. 여름의 꽃이 피어난. 그게 마지막 연락이었다. 꽃이 졌다고 속상하다는 그 연락. 나는 그 연락마저도 대충 넘기고 닫았지.


꽃은 매년 핀대도 항상 저러지, 항상.


답장도 못 한 그날. 시든 꽃자리에 푸르게 돋아난 잎사귀. 엄마도 참, 푸른 잎새는 보이지도 않았나. 그 꽃이 마지막이라 여겼나. 꽃만 보지 말라니까. 이 세상은 더럽게도 추악하고 못난 것이 많은데. 그저 아름다운 분홍 꽃이라니. 결국 내 사진첩에는 꽃, 꽃. 빛나는 꽃. 엄마는 뭐가 보여주고 싶어서 이렇게 봄을 사랑했는지.


여름이 지나고, 갈색은 칙칙하다며 싫어하던 가을, 온몸이 시리다며 싫어하는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 올 때까지. 나는 '봄'을 믿지 않았다. 올해는 꽃 사진이 아직이잖아. 분홍꽃 가득 피어야 봄인 거잖아. 아직 봄은 오지 않은 거잖아.


닿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 분홍꽃이 궁금해진다. 매년 피어나는 그 분홍꽃. 어차피 매번 똑같이 피는 그 꽃이 뭐 그리 좋아서 내게 보낸 건지.


무작정 내려가 분홍꽃을 찾았다. 왜 꽃이 없지. 매년 피던 그 꽃이 왜 보이지 않지. 질리게도 본 꽃인데. 이렇게 다 사라질 순 없는데.


"저 옆집인데요, 할머님 계시나요?"


비척비척 힘겨운 걸음으로 문 앞에 나서시는 할머니. 몸이 안 좋으셔서 올해부턴 꽃을 안 키우시나. 홀로 답을 내리고 조마조마해서. 텅 빈 담벼락을 바라보며 침만 삼키는 내게 미안하단 듯 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에구, 옆 집 딸? 미안해요. 내가 몸이 안 좋아서. 도와줄 사람도 없고... 그렇게 됐어요."


"꽃이요? 올해부터 몸이 안 좋아지셨나 봐요."


"에이구, 아녀. 몸은 늙은이가 다 똑같지.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그래요. 그 꽃은 내가 키우던 게 아니거든. 꽃 보러 온 거지요?"


"할머님이 키우시던 게 아니세요? 그럼, 저희 엄마는..."


"맞아요, 내가 키운 게 아니고... 옆집, 그러니까 아가씨 어머니가 키운 거예요. 대신 물도 주고 지극정성이었지... 꽃을 무척 좋아하나 봐. 자기 집엔 하나도 안 키우면서. 뭐 그리 애틋하게 기르는지... 그냥 내버려 뒀어요."


"... 저희 엄마가요?"


"그래요, 분홍색 꽃이 좋다던데요. 딸이 좋아한대요."


제가요?라고 떠올리다 미처 내뱉지 못했다. 뭐 때문이야. 생각하다가 대답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꽃을 키웠어. 아름다운 건 다 엄마의 몫이었어?


-

봄이 좋지 않니? 묻는 말에 그저 대답했다. 분홍색이 가득 찬 그곳이 너무 좋다고. 나는 분홍을 좋아하잖아. 삭삭 빗어 올리는 머리칼. 부드러운 그 손길. 왕방울만한 머리끈으로 묶은 그 유년기.


"너는 내 꽃이야. 가장 빛나는"


"사람이 어떻게 꽃이야?"


"내가 가장 정성 들여 기른 것이니까. 이 봐, 이렇게 고운 꽃이 또 어딨어. 수채화빛처럼 분홍빛 물든 뺨 좀 봐. 얼마나 고운데."


웃음으로 가득 찬 공간. 아 나는 꽃이었는데.


-

"엄마한테 자주 연락 좀 해. 엄마는 너만 기다리잖아."


"엄마는 참... 별 일 있으면 연락하겠지. 엄마도 일 있으면 연락할 거잖아."


"꼭 일이 있어야 연락해야 해? 보고 싶은 것도 일....."


꽃 안부라도 묻고 싶었나 내게. 아름다운 걸 보여주고 싶었나. 나는 늘 외로움만 주었는데. 그리 예쁜 꽃을 피워내주었는데. 나는 꽃 한 송이 피어내지 못했는데. 왜 그렇게 꽃을 피웠어. 왜 꽃이 핀다고 했어.


세상은 더럽고, 보기 싫은 게 가득해서. 꽃 없는 이 봄은 너무도 두렵네. 꽃은 다시 피지 않을 거잖아. 어쩌면 피어낸대도 나는 모를 테니까.


엄마는 무슨 꽃을 좋아했어? 내가 좋아하는 분홍색 꽃 말고, 무슨 꽃이 좋았길래. 내가 주책이다 말할까 본인 앞마당엔 꽃도 못 키운 건지. 꽃을 좋아하긴 했는지. 난 엄마가 꽃을 좋아하는 줄 알았네. 아닌가, 엄마는 꽃을 좋아했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네. 앞으로 꽃이 피어났음도 모를 테니까.


엄마, 꽃이 피었어.

엄마는 내게 매년 꽃이 피었다고 말해주곤 했으니까. 이 꽃은 동백꽃이래. 쉽게 지진 않겠지?


난 봄이 참 밉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