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심리학과에 온 것은

by 유월

작가를 지망하던 내가 심리학과에 온 것은 가족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내 마음 하나 모르니 답답하여 심리학 서적을 보았고, 가족들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많아 가정심리학도서를 읽었다. 대학교에 진학한다면, 이러한 답답함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도 문예창작을 진학하는 것보단, 심리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했으니 내가 심리학과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했지만, 엄마와 사이가 나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크면 클수록 엄마는 다정한 부모님의 모습과 가까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내게 상처로 남았다. 어릴 때 받은 상처는 따지기도 힘들어졌으니까. 난 여전히 엄마의 눈치를 보고, 심장이 빨리 뛰지만. 그럼에도 눈앞의 엄마는 다정하셨다. 고등학교 내내 아침밥을 차려주신 것이 그랬다. 그 아침밥의 무게는 무거웠다. 그런데도 엄마를 미워한다는 죄책감, 그리고 원망. 원래 이렇게 해줄 수 있던 사람이라면, 어렸을 때는 왜 그랬는지에 대한 답답함. 편히 미워할 수도, 편히 사랑할 수도 없는 것이 엄마와 나의 사이였다.


엄마와 다툰 적이 없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다툼이 없던 것은 그저 엄마와의 관계를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다정해 보이는 엄마에게 따지고 들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참기로 했다, 그저 넘어가기로 했다. 싸울 일을 만들지 않았다. 서울소재 대학교에 붙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원서 접수할 때 허락을 이미 받았음에도. '그럼 떨어지길 바랐던 거냐'고 따져 묻지 못했다. 내가 아무 대학이나 가길 바랐으면 '성적에는 왜 그렇게 집착한 것이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그저 방에서 울다 통학이 가능한 다른 지역의 대학교로 진학했을 뿐이었다. '그래, 우리 집 사정에 서울이라니.' 눈물이 나는 건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심리학과에 진학하니까 이런 일은 금방 잊힐 것이라고. 진학하는 대학교에 가정심리학 내용이 있으니 잘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사실 나도 자신이 없었을 것이라고.


심리학과에 진학하고 엄마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음을 인지했지만. 그것을 이해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 나는 더 어리고, 연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을 배운 다는 것은 그런 일이었다. 우리 가족의 문제를 인지하고, 내 상처를 이해하게 되는 것. 그리고 수많은 가정심리학 도서처럼 결국 나도 무너질 것이라는 것. 엄마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 수많은 병명들이 나를 따르는 것은,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불가피한 일이라는 것.
어릴 땐 엄마를 사랑했다. 어릴 때 흔히 하던 소원내기의 소원만 봐도 그랬다. 올백을 맞으면 안아달라고 했던가. 그 포옹이 대수라고 정말 올백을 받아서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부탁했던 그날. 내가 그 포옹을 기억하는 것은 그 품이 따뜻해서가 아니었다. 그 어정쩡한 품, 어쩌면 난 한 번도 엄마에게 만족할만한 사랑을 받지 못하겠구나라는 두려움, 그리고 공허함.


지금도 엄마를 사랑한다. 비롯 거짓으로 덧붙고, 괴로운 마음이 함께일지라도, 상담받는다는 이야기조차 못할지라도.
다정해진 엄마께 다정한 딸이 되어야 하는 나는, 오늘도 심리학에 상처받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