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고 싶지 않아서, 세상을 떠나고 싶었다
부끄러운 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내 삶의 목표이기도 했다. 자랑스러운 딸을 바랐지만, 결국 이룰 수 없었다.
어릴 땐 '칭찬받고 싶단 이유'로 수많은 상을 받았다. 반장선거에 반장이 되고, 영재반에 들어가기도 했다. 거기서 눈에 띄어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수상을 했고, 아침 조회시간에 대표로 상 받는 일이 잦았다. 중학교 때도 큰 상을 받아 플래카드가 걸렸다. 우리 집에선 그 플래카드가 보였다. 바람에 펄럭이는 플래카드에도, 엄마는 크게 미동하지 않으셨다. 나는 스스로가 조금 자랑스러웠으나, 그 이후엔 크게 기쁘지 않았다. 나는 평생을 인정받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게 두려운 일이 되었다.
수학을 잘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다른 과목은 다 95점이 넘는데도 수학은 80점을 맞았다. 학원을 다니진 않았다. 문제집조차 풀어본 적 없이, 독학이었다.
엄마는 내게 그렇게 말하셨다. "내일 네가 어떤 성적을 받아올지 걱정이 돼.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죄송하다고 했다. 더 잘해보겠다고 말할 뿐이었다.
다음 시험엔, 수학에서 100점을 받았다. 재능기부반에 들어가 수학을 알려주는 일을 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그게 다였다. 중학교 때부터는 수학을 포기했다. 더 잘한 자신도, 잘하고 싶지 않았다.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노력해서 얻을 게 뭘까. 비참해지는 것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상담을 받기 전까지는 나의 절망이 크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여느 부모들이 다 표현에 인색할 것이라고. 내가 전교 1등을 했으면 다르지 않았겠냐고 자책했다. 초등학교 때 그런 불미스러운 일로 상담을 받지 않았다면, 더 자랑스러운 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했다. 부질없었다, 사실 어떤 방법으로도 나는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없었을 텐데. 엄마에 대한 원망이 생각보다 컸다. 억울한 마음이 꿈틀거렸다.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데?'하고 답답해 화가 나다가도 엄마의 사랑이 그리웠다. '애증'이었다. 엄마와 나랑은 이라는 SCT 문장 완성 검사에서. '닮았다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라고 적은 것처럼.
엄마를 이해하고 싶었다. 엄마도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나도 어렸다. 나도 사랑받고 싶었다. 그때 한 번만 더 나를 안아주지 그랬느냐고, 그때 조금만 날 다독여주지 그랬냐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부끄러운 딸이라면 사라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사람 한 명 키우는 데에 돈이 얼마가 드는데, 차라리 이런 딸은 없어지는 게 낫지 않겠냐고. 엄마가 날 낳은 걸 후회하시진 않을까 생각했다. 죽음이 온다면, 부끄럽진 않을 텐데. 상담받는 딸이, 죽는 딸보다 나을까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려워서. 매 순간 방황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왜 그러냐는 엄마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를 너무 사랑하지만, 너무 미워서. 그렇게 큰일이 아닐 텐데도, 너무나도 사무치게 아파서. 죽음이 더 아플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아서. 엄마가 나의 죽음에 슬퍼할지 모르겠어서. 잠을 들기 전, 드는 생각은 항상 '나는 부끄러운 딸이야' 하는 한심한 생각들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