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존중하나요?
상담이 몇 회차 지나가고 나는 내 원인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했다. 매번 왜 불안하고 우울한지 모르겠다 이야기했었던 나였지만 점차 윤곽이 보이고 있었다. 특히나 불안이 가정환경에서 오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내겐 큰 도움이 되었다.
"본인의 감정과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가정환경이라는 답을 찾은 것도 내겐 큰 걸음이 되었는데.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직면하지 못하는 나의 고질적 문제였다.
회피, 나의 방어기제이자 가장 손쉬운 방법. 내가 '감정을 외면하는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더 생각이 많아졌었다.
"그런 기분이 들 수 있어요. 그게 나쁜 게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거예요. 왜 그 감정이 들었지? 내가 예민한 거겠지? 생각하면 스스로를 갉아먹어요."
스스로를 항상 예민하고 피곤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내 감정의 폭은 지나치게 크고, 과민하다고. 사람들과 결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는 늘 내 감정에 바로 답하는 적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내가 더 예민하다고 느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 있던 말들에 웃어넘긴 일, 내 감정이 무시당한 순간에도 상대의 기분을 고려한 일, 기분 나쁘다는 이야기를 했을지라도 상대방의 눈치를 보고 이야기를 마치지 못한 일.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감정을 온전히 바라보는 일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두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답답함.
"제 일은, 그렇게까지 서운할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요? 그때 상황이... 그들도 어쩔 수 없던..."
스스로도 어이없던 답변들, 무의미한 생각들. 나를 위한 생각 대신 남들을 위한 생각, 그리고 또 생각. 남들이 이기적인 거 아니야 라는 우스운 생각과, 남들에게 얼마나 바보처럼 비추었을까 하는 답답함. 나는 내 생각들이 우습게 느껴졌다. 내가 망가져서 여기에 앉아있음에도. 내 생각은 한치 못하고, 타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이래서 우울증인가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감정표현에 미숙하다는 걸 깨닫곤 감정 카드, 욕구 카드를 이용하여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카드를 처음 사용한 날에는 나의 욕구가 '인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한 인정, 배려해 줌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그러나 돌아오는 것 하나 없이 불안, 조급함, 답답합에 심장을 조여오던 그 순간들. 과제로 감정일기들을 작성해보기도 했다. 나는 내 감정을 온전히 바라볼 시각이 부족했다. 일기를 쓰는 것도 쉬운 일이 되지 않았다.
상담을 진행하며 알게 된 것은 사실 많은 사람에게 인정바라지 않는다는 거였다. 가장 가깝지만, 너무도 미운 '엄마'. 엄마 앞에 서면 작아지던 나는, 엄마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던 아이였다.
혼자 자취를 시작하고 해내야 할 것이 많아진 나. 좋지 않은 형편에도 조금 보태주시던 월세. 그런 부담감에 잘 해내야 하는 나. 그렇지만 할 수 없는 나, 그런 괴리. 어쩌면 나는 감정을 헤아릴 시간이 없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앞에만 서면 긴장하고 눈치를 보는데.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리라 없을 테니까. 과거 생각이 났다. 내가 상담받는다는 그 사실에 슬퍼하시던 우리 엄마.
엄마, 나는 아직도 상담을 받아. 엄마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