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청세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라는 이름의 청소년 인문 토론의 장입니다. 정세청세는 청소년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타인을 존중하는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길 꿈꿉니다. 2019년 현재까지 36개 지역에서 2만 4천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참여했으며, 올해 정세청세에서는 “삶이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도록”이라는 주제로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정세청세 브런치 네 번째 글은 전국의 정세청세 청소년 기획팀원과 만나며 소통하고 있는 총괄기획팀원 민병일 님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세청세에서 활동하고 있는 25살 청년 민병일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울산에서 정세청세에 처음 참여한 이후로 정세청세 기획팀원이 되어서 활동했고, 지금은 전국에 파견을 가며 청소년들을 만나 함께 호흡하며 정세청세를 열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전국 9개 지역의 21개 청소년 기획팀을 만나왔는데요. 올해도 대구, 대전, 부안, 세종 지역의 청소년 기획팀원과 함께 정세청세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전국의 더 많은 청소년과 함께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세상에 대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때론 풍요롭고 아름다울 것만 같았던 지구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앓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큰 슬픔과 충격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제외한 주위의 어른들과 친구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저는 답답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청소년들이 진지하게 토론하는 곳이 있다고 하여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정세청세와 만났습니다. 그곳의 청소년들은 제가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던 환경 문제를 비롯하여 자유와 인권 등 책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가치에 대해서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정세청세 토론에 참여하는 경험은 저에게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함께 연대하며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런 정세청세에서 신규기획팀원을 모집한다고 말을 들었을 때 너무 기쁜 나머지 함께하고 싶다고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정세청세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청년이 되면 총괄기획팀원으로 활동을 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총괄기획팀은 청소년 시절 정세청세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 팀원들이 정세청세를 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저는 2014년에 총괄기획팀원이 되었고, 그해 2월 포항을 태어나서 처음 가게 되었습니다. 포항은 어떤 곳일지, 어떤 청소년들을 만날지 한껏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부터 길을 나섰습니다. 절 반갑게 맞이해준 포항의 청소년 기획팀원들은 어떻게 하면 더 멋지고, 훌륭한 정세청세를 열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고, 의미 있는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청소년들을 보며, 저는 울산에서 정세청세를 했던 제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무척 고무되었습니다. 제가 정세청세를 하면서 배운 경험을 나누고, 포항팀이 맞이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순간들은 무척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 벅차오르는 순간들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청소년 기획팀원을 돕기 위한 파견 활동이 항상 설레고 감동적인 것은 아닙니다. 타지역에 파견을 가야 하다 보니 기차와 버스 등의 교통수단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먼 지역에 갈 때는 일찍 일어나야 하고, 환승 시간을 맞춰야 할 때는 끼니도 거릅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기차였는데, 이제는 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노곤함도 눈을 빛내며 저를 기다리고 있는 청소년 기획팀원들과 만나면 어느 순간에 신이 나고, 그렇게 청소년들과 만나고 돌아온 날에는 편안하게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파견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팀원들과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는 것입니다. 총괄기획팀은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주제에 대해서 기획팀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나누기 위해서 사전에 공부와 준비를 많이 합니다. 2019년 제2회 정세청세의 주제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였습니다. 이 주제를 준비하면서 청소년 기획팀원들과 나누고자 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총괄기획팀에서는 경제학계의 마더 테레사 불리는 ‘아마르티아 센’이라는 학자의 이야기를 공부하고 준비했습니다.
1943년 한창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때, 인도에서 30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먹지 못해 아사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사람이 먹지 못해 죽은 것이죠. 많은 사람이 당시에 큰 자연재해가 있었고 흉년이 들어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이 사건을 조사하던 아마르티아 센은 다른 사실을 발견합니다. 흉년이긴 했지만, 그 전년도보다 식량 생산량이 많았던 것입니다. 문제는 식량 생산 자체가 아니라 생산된 식량의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인도를 점령한 영국의 잘못된 정책과 인도 시장 내에서의 사재기와 담합 등의 폭리를 취하려는 상인과 지주들의 횡포가 나은 비극적인 사건이었지요.
가난은 물질 자원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잠재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 당한 상태를 말한다.
- 아마르티아 센
이 사건을 통해서 아마르티아 센은 단지 생산량의 증가와 경제 성장이 인간 삶의 복지 수준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경제 성장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민주적인 정치가 발달하고, 사람들의 교육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으로 센은 기존에 한 국가의 경쟁력을 나타냈던 지표인 GDP(Gross Domestic Product,국내총생산)의 한계를 개선하는 지표를 HDI(Human Development Index,인간개발지수)를 만들어 냅니다. 이 지표에는 기존에 경제적 수준뿐만 아니라, 정치 체제가 얼마나 민주적이며, 사람들의 교육 수준은 어떠한지 등 총체적으로 삶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포함되었습니다. 센은 이 연구로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저는 이런 아마르티아 센의 이야기를 통해서 청소년들과 우리의 현실에 대해서 토론합니다. 세종시에서 만난 한 기획팀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들이랑 놀아본 기억이 거의 없어요. 아니, 못 놀아요. 학교 쉬는 시간에 틈틈이 대화하는 정도?
마치 GDP가 그 국가 내에서 인간적인 삶의 수준을 나타내지 못하듯, 성적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얼굴 역량을 결코 나타내지 못합니다. 아마르티아 센이 대한민국에 있었다면 이런 청소년들을 위한 새로운 삶의 지표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정세청세에서 우리는 우리가 받는 이 교육에 대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자기 자신만의 꿈을 꿀 수 있고, 행복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소년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성적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요. 자유, 사랑, 인권, 행복, 우정, 다양성, 생명 등 우리 삶에는 훨씬 더 중요하고 다양한 가치가 많이 있다는 것을요. 정세청세에서는 바로 그런 가치를 공부하고 나눠갈 것이라는 것을요.
최근에 『동학에서 미래를 배우다』를 읽었습니다. 동학은 150여년 전 우리 한반도에 살았던 선조들이 얼마나 고귀한 정신을 가진 인간이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각종 모순이 분출하던 조선 후기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 대한 차별을 멈추고 모든 존재가 각자 존엄함을 지키는 삶을 위해서 공동체를 이루고자 위해 노력했습니다. 인간에 그치지 않고 가축조차도 존엄하다고 말하는 동학의 정신은 21세기 오늘날에도 배울 점이 많습니다. 동학의 정신을 알리기 위해 2대 교주 최시형은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오죽했으면 ‘최보따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지요. 그런 최시형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교세를 확장했고, 이는 이후 1894년에 불붙은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 최시형을 떠올리며 저는 앞으로도 보따리 하나 싸들고 전국을 다니려고 합니다. 한 권의 책을 담은 이 조그만 가방으로 전국의 수많은 청소년을 만나 땅에서, 아래에서 시작하는 정의로운 세상을 열어가고자 합니다. 모든 이가 평등하고 평화를 찾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떠나겠습니다. 비록 길고 힘든 여정일 테지만 고통 받는 청소년들의 목소리와 아름다운 세상을 상상한다면 한시도 이 걸음을 제자리에 두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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