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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세청세 May 17. 2019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들의 비밀 동아리

정세청세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라는 이름의 청소년 인문 토론의 장입니다. 정세청세는 청소년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타인을 존중하는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길 꿈꿉니다. 2019년 현재까지 36개 지역에서 2만 4천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참여했으며, 올해 정세청세에서는 “삶이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도록”이라는 주제로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정세청세 브런치 세 번째 글은 학교와 청소년 시설에서 동아리 단위로 참여할 수 있는 동아리 정세청세의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항상 배낭에 책 한 권을 들고 다닌다면
우리 모두의 삶이 더욱 나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다라야 지하 비밀 도서관과 대한민국 청소년


이야기는 작년 11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일요일 오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디고 서원에서는 여느 때처럼 청소년들의 뜨거운 토론이 한창이었습니다. 이날 청소년들이 토론을 하기 위해 읽은 책은『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이었습니다. 이 책은 전쟁 중인 시리아의 한 도시인 다라야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시리아는 2011년부터 정부군과 반군 그리고 테러조직과 세계열강의 개입으로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한 전쟁의 불길에 휩싸였지요. 특히 다라야는 시리아 내에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 정부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많았던 도시였고, 이에 정부군의 공습이 집중되었습니다. 한 달에 900차례가 넘는 폭격이 쏟아질 지경이었습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절망과 잿빛의 도시가 되어 많은 이들이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폭격 속에도 탈출하지 않고 도시에 남아서 저항하던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청년들은 폐허가 된 건물의 잔해에서 책을 발견하고는, 이 책을 모아서 지하실에 비밀 도서관을 만듭니다. 당장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현실이었지만, 이들은 매일같이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고 사유하고, 토론했습니다. 이곳은 다라야에서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년들의 해방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들은 전쟁이 낳은 슬픔과 두려움, 절망에 휩싸이지 않고, 책을 읽으며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이들의 책읽기는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절실한 노력이었습니다. 이처럼 이들은 지하 비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8년 간 지속된 시리아 전쟁으로 고통과 절망에 잠겼으며, 그런 시리아를 떠나 난민된 사람들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청년들


인디고 서원의 청소년들은 이처럼 인간성이 위협받는 위기에 놓인 곳은 다라야 뿐만이 아니며, 세계 곳곳에 지하 비밀 도서관이 필요한 이들에 대해서 토론하였습니다. 이야기 중에는 서남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 중동에서 아동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어린이들, 전쟁과 각종 분쟁으로 생긴 난민들, 생각의 자유를 얻지 못한 북한의 청소년들 등 지금 우리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받고 있는 세계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가장 절실하게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지하 비밀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 것은 바로 ‘대한민국 청소년’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이 세계에서 지하 비밀 도서관이 필요한 사람들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가 경쟁 상대가 되는 학교 시스템 속에서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전쟁 같은 하루하루가 우리에게서 생각하는 힘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대부분 학생은 자유로운 생각을 돕는 책과 거리가 너무나도 멉니다. 우리에게도 지하 비밀 도서관이 있다면,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자기만의 생각을 할 수 있고, 이를 주위 친구들과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수겸(16세)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비밀 동아리를 만들어볼까?


청소년들은 우리가 직접 그러한 비밀 동아리를 만들어가는 것에 대한 의견을 냈습니다. 학교마다 도서관이 있지만, 정말로 청소년들의 해방구이자 인간성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책읽기를 넘어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함께 토론할 수 있는 동아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습니다. 당시 전국에서 청소년 인문 토론의 장을 열어가고 있던 정세청세에서도 울산, 부안, 대구, 대전 등지에서 청소년 동아리가 주축이 되어서 행사를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정세청세의 경험을 활용하여 학교와 청소년 시설의 동아리 단위에서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고 이것이 ‘동아리 정세청세’입니다. 


청소년들과 동아리 단위에서 정세청세 토론을 진행하는 기획에 대해 이야기할 때 너도나도 이 프로젝트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해주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니 친구들이 말이 험하고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친구들과 함께 의미 있는 소통을 해나가고 싶어요”, “한국의 청소년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기 생각을 하는 것보단 주어진 지식을 암기하는 데 급급합니다.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며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토론하고 싶어요.”와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그렇게 청소년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동아리 정세청세의 기획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학기 초에 동아리 활동을 하는 시기에 맞추어 8,600개의 학교에 팩스를 보내었고, 그간 인디고 서원, 정세청세와 인연이 있었던 600여명의 선생님께 전화와 문자, 그리고 메일을 보내어 홍보하였습니다. 연락이 오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이 가닿았을까요, 하나둘씩 동아리 정세청세를 신청하겠다는 학교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에서 열린 동아리 정세청세 인문학 특강(왼쪽 위부터 브니엘여자고등학교, 수남중학교, 상주중학교)



정의와 희망의 동반자들


모든 진행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동아리 정세청세를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교가 모두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선생님들께 직접 연락을 했을 때 좋은 기획이라고 환영한다는 메시지는 많았지만, 이미 학교 내에서 진행하고 있는 동아리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거나 동아리 운영 방식을 바꾸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학생들 중에서도 기획을 설명했을 때 함께 하기 위해서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봤습니다. 무엇보다도 학교장의 권한이 막강한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원한다고 할지라도 학교장 선에서 동아리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좌절할 때마다 언제나 힘을 주신 건 오히려 선생님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멀리서 인디고 서원과 정세청세를 지켜보고 지지하고 계시던 선생님들께서 학교에 동아리 정세청세를 만들었습니다. 기획의 이야기를 듣고는 “제가 다 가슴이 설레는 기획이네요. 꼭 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을 주신 선생님도 있었고, “우리 학교에서는 토론을 많이 하지만 단순히 찬반 토론이 아니라 깊이 있는 인문 토론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정세청세를 기획해봅시다”와 같이 저보다 더 의욕적인 모습으로 새로운 기획을 제안해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선생님들과 청소년들이 정의와 희망의 동반자가 되어, 마음을 조금씩 모아 주셨기 때문에 동아리 정세청세가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전국 동아리 정세청세 첫번째 회의(왼쪽 위부터 한울고등학교, 부구중학교, 효암고등학교)


삶이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이 잘할 수 있을까요?” 


동아리 정세청세를 제안할 때 선생님들로부터 종종 듣게 되는 말입니다.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사실 해보기 전에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특히 미성숙하다고 평가를 많이 받습니다. 무언가를 스스로 하기에는 여전히 어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잣대에 맞춰집니다. 공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등과 같이 말입니다. 청소년들이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이미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기 때문은 아닐지요. 


제가 만난 청소년들은 정해진 틀에 한정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미성숙하지만, 그런 자신의 미성숙함을 알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민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청소년들은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고, 자신의 삶과 우리 공동체와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주체적인 민주시민입니다. 교육의 역할은 바로 이런 청소년들의 가능성을 일깨워주고,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닐까요. 


동아리 정세청세는 이 땅의 모든 청소년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이 세계를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무수한 고민과 상처와 마주할 것이며, 동시에 우리 세계가 겪고 있는 시대적 문제들을 직시하고 해결해나가기 위해 토론할 것입니다. 그런 경험 속에서 우리 청소년들은 자기 삶을 빛낼 수 있는 가치를 찾아가고, 각각이 고유한 아름다움을 잘 실현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동아리 정세청세는 모든 개인이 갖고 있는 선한 영향력을 믿고 지지합니다. 


2019년 5월 현재 전국 22개 기관의 208명의 청소년들이 동아리 정세청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동아리 정세청세의 청소년들은 지금, 여기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스스로 찾아 나갈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삶이 보다 아름다워지고, 정의로운 민주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해나갈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서도 정세청세의 꿈에 함께해주신다면 우리가 꿈꾸는 정의로운 세상과 행복한 미래는 우리 눈앞에 한 걸음 더 다가올 것이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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