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청세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라는 이름의 청소년 인문 토론의 장입니다. 정세청세는 청소년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타인을 존중하는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길 꿈꿉니다. 2019년 현재까지 36개 지역에서 2만 4천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참여했으며, 올해 정세청세에서는 “삶이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도록”이라는 주제로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정세청세 브런치 두 번째 글은 대구에서 정세청세 기획팀 활동을 하는 수연이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19살 청소년 백수연입니다. 오늘은 2년 전 제가 정세청세를 어떻게 접했고, 왜 지금까지 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지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2년 전인 2017년, 갓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저는 봄처럼 따뜻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단 한마디가 쓰인 ‘누리봄’이라는 동아리의 포스터를 보고 홀린 듯이 그 동아리에 가입했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며 세상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가 과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있는 걸까?’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고민에 빠져 있던 저에게 동아리 담당 선생님께서 『두잉 데모크라시(Doing Democracy)』라는 책을 주셨어요.
그 책을 꼬박 하루 만에 모두 읽었습니다. 책은 민주주의가 일상에서 깨어있는 시민들의 실천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고파 하던 저는 그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희망 그 자체라고 느꼈습니다. 책을 주신 선생님께서 이 책을 펴낸 부산의 인디고 서원에서 청소년 인문 토론 행사인 정세청세가 열리니 한번 참가해보는 게 어떨지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선생님과 3명의 선배, 친구들과 함께 곧장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참여한 것이 2017년 7월 15일에 열린 제3회 정세청세 행사였습니다. 아직도 그날을 기억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작은 토론행사인 줄 알았는데, 이름표를 받고 행사장소 안으로 들어가면서 생각보다 큰 규모와 잘 준비된 분위기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는 모두 다 다른 조에 배정이 되었는데요. 알고 보니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부산 정세청세 기획팀이 배려하여 조를 구성했던 것이었어요. 이런 작은 부분까지 생각하는 것이 제 또래로 이뤄진 기획팀이라는 점에서 감동하였죠. 행사가 시작되고 주제에 관련된 영상을 본 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에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자기소개를 마치고, 토론이 시작된 후 조심스레 지켜보다가 용기 내서 한마디를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제 말에 귀 기울여주고, 적극적으로 반응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제 안에 있는 이야기가 절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말이 트이고 제 생각을 서슴없이 말할 수 있게 된 무렵, 잠깐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70여 명이 되는 청소년들이 조별로 둥글게 모여 앉아 열정적으로 토론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들이 얼마나 가슴 벅찼던지, 잠깐 울컥하기도 했어요. 그 생생하고 뜨거웠던 분위기를 보고 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세청세 활동을 하고 싶다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당시 주제가 ‘정치적 상상력 발휘하기’였는데요. 청소년이 모여서 우리가 살고 싶은, 우리가 만들어가야만 하는 세계에 대해 무한히 상상하고 공유하면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토론하는 것도 결국은 일상의 정치인 거야”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청소년이 낼 수 있는 순수하고 정의로운 마음을 담아 세상을 향해 청원하는 글을 써보기도 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정세청세 기획팀에 대구 지역에서도 정세청세를 열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연락과 만남을, 준비 과정을 거친 후, 저는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대구지역 정세청세를 개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큰 뜻을 품고 대구에서 정세청세를 열어나갈 기획팀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정세청세 활동에 열정적이지 않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성적에 욕심을 냈던 것도 아니지만,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세청세 행사가 진행되는 3시간을 위해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공부하고 회의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에요.
제가 정세청세를 만나기 전과 다를 것 없던 일상을 살고 있던 어느 날, 정세청세에서 참여한 청소년들과 함께 ‘인문학 콘서트’라는 형식으로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은은한 조명과 잔잔한 음악 아래 자신의 희망을 포스트잇에 익명으로 적어내고 사회자가 그걸 뽑아서 이야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제가 뭐가 되고 싶은지 몰라서 답답해요.”, “여기에 적을 희망조차 없어서 여러분들의 희망은 무엇인지 묻고 싶어요”라고 적힌 포스트잇을 읽는데 펑펑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사람들은 청소년을 세상의 희망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그 청소년들은 자신의 희망을 이룰 수 없고, 심지어 가질 수조차 없는 세상이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정세청세를 통해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저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다른 외적 상황이 아니라, 제 마음속의 갈등이었어요. 오직 학업에 몰두하라는 학교 선생님의 말씀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학원을 빠질 용기를 낼 수도 있는, 성적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을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019년의 첫 번째 정세청세는 제가 기획팀으로 맞는 10번째 행사였어요. 1회의 주제는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가?”였어요. 행사 3주 전 온라인에서 열리는 전국 공부 모임에 참여했는데, 올해 첫 공부 모임이었던 만큼 열정이 가득가득했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변화를 위해 용기를 가지고 실천으로 옮기려는 다수의 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죠.
권민주(16세, 강릉)
“우리는 어떤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주제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떻게 이야기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문제나 관심을 가지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서 먼저 생각했습니다. 저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가는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세먼지, 플라스틱을 먹는 해양 동물들, 기후 변화로 작년에 무너진 최후의 빙하 등 점점 지구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물론 환경을 보호하려는 노력도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저는 솔직히 환경오염은 사람들이 편하게 살아가려는 욕심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간이 환경을 완전히 오염시키지 않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적정한 수준에서 조정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토론하고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전수빈(18세, 부산)
환경 문제에 대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대처하고자 최근 들어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금지, 종이 빨대 교체 등 다양한 환경정책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에 따른 부수적인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생각하지 않은 채, 본질을 비껴간 대안들만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구온난화를 되돌리거나,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사라진 연어를 다시 강으로 불러오는 방법도 모르며, 이미 사막화된 숲을 초록빛으로 만드는 법도 모릅니다.
어른들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친구들과는 사이좋게 지내야 하며 내가 어지른 곳은 내가 정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아이가 자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한 순간부터 이야기합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은 나눌 줄 알아야 하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 가치들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가치를 전환해서 가진 것을 나누고, 미래 세대와 지구를 위해 본질적인 해법을 찾아가야 합니다.
김경민(19세, 울산)
제가 생각할 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다지 아름다운 모습은 아닙니다. 우선, 저는 울산광역시에 살고 있습니다. 5살 때 울산으로 이사 온 이래 15년째 살고 있는 동네이지만, 아름답다고만 이야기할 순 없을 듯합니다. 재개발 정책이 실행되면서 기존 거주민과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곳도 있고, 지역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이 학교 공사 업체 선정 과정에서 억대의 뇌물을 수수하면서 구속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0년, 50년, 100년 전에 비교해서 나아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하청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난민 등 많은 사람이 다양한 경우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찾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국경 너머로 범위를 넓혀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태평양 한가운데의 미드웨이섬에서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알바트로스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에 저는 아무렇지 않게 남은 급식을 버렸지만, 바다 건너 필리핀에서는 누군가가 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다 음식으로 섭취하고 있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또다시 군사 충돌이 벌어지고 있으며, 중동과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은 여전히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아주 극소수에 불과한 사례들만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그리 아름답지 않음은 자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런 세상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아니,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하지만 이런 절망을 딛고 정의로운 눈으로 시대의 문제를 직시하고,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병폐들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작은 한 개인에 불과할지라도, 문제를 직시하고 행동해나갈 때 사회는 변합니다. 그 과정에서 고난을 겪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면 끝까지 행동하는 것, 설령 실패하더라도 그 실천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닐까요?
제 또래의 청소년들과 이런 토론을 나누는 순간에 저는 정말로 저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행사 당일 어느 때에도 느끼지 못했던 떨림을 느꼈습니다. 그동안의 떨림은 행사가 곧 시작된다는 단순한 설렘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보다 더 깊은 짠한 느낌이었죠. 부산에 찾아갔던 것부터, 저와 친구들이 대구팀을 만들고 기반을 다진 것, 전국의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 것, 새로운 기획팀원을 만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2년 전의 저와 같은 나이인 17살 참가자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행사장에 들어왔을 때, 저는 제가 2년 전 부산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그 친구들도 꼭 느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습니다.
저는 올해 고3이지만 십 대의 마지막 해를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2019년은 청소년 기획팀원으로서 정세청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마지막 해이기 때문에 저에게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10대로서 세상에 보일 수 있는 열정을 끝까지 보이고, 정세청세 활동을 하며 내면적으로 훌쩍 성장한 저의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2019년은 무엇보다 공부에 집중하는 해로 만들고 싶습니다. 학교 공부와 정세청세에서 하는 인생 공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당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행사의 실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작년보다 신경을 많이 못 쓰게 되겠지만, 시간이 흘러 정세청세 활동에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도 인생 공부를 스스로 해나갈 수 있을 만큼의 자립심을 기르기 위해 정세청세에서도, 정세청세 밖에서도 많은 공부를 할 것입니다. 삶을 제가 좋아하는 것으로, 저를 감동시킬 수 있는 것으로, 제 가슴이 뛰게 만드는 것으로 가득 채울 겁니다. “내 10대는 ‘정세청세’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라는 말이 이루어질 수 있게 정세청세에서 좋은 영향 많이 받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글로 표현한 열정적인 마음을 계속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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